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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정보/유초등부설교

바닥에 새겨진 사랑_요한복음 8:1~11_청소년, 중고등부 설교

by reviewer_life 2014.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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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새겨진 사랑_요한복음 8:1~11

 

8:1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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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In His Steps What Would Jesus Do 찰스 M. 쉘돈

 

100여 년 전인 1897년에 미국에서 출판된 찰스 M. 셀던 목사의[IN HIS STEPS]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Charles M. Sheldon 목사의 저서[IN HIS STEPS]에 부제로 사용되었던 " What would Jesus do? " wwjd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의미의 What Would Jesus Do? 의 약자입니다. 미시간의 홀랜드의 한 젊은이들의 단체가 챨스 셀던의 소설로 쓰여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에 나오는 한명의 집 없는 사람의 질문에 근거를 두고 시작되었습니다.

이 운동의 창설자들은 만약 각자가 모든 결정을 할 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고 질문한다면, 결정을 할 때 마다 조금씩 세상은 변해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폭력과 성적문란으로 오염된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 이 운동은 많은 영향을 끼쳐서 혼전순결운동과 기도운동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한국에서도 [예수님은 어떻게 하실까?]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책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미국에서는 기독교문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서 <WWJD?>라는 축약어의 형태로 팔찌, 티셔츠, 성경책 커버, 운동 모자, 석공예품, 벽 장식품, 메모지 묶음, 그리고 수많은 종류의 개인 장식품 악세서리들로 더욱 널리 알려진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 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라는 질문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요구했던 질문과 유사합니다. 모세는 돌로 치라고 명령했는데 예수님 당신은 어떻게 말하겠느냐고 물으면서 꼬투리를 잡기 위해 교묘한 함정을 팝니다. 만약에 모세의 말처럼 돌로 치라고 명령한다면 다시말해서 율법대로 이 여인을 죽인다면 로마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이 당시 유대 땅은 로마의 지배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사형의 권한은 로마에게 있었고 이것을 어기면 심각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율법을 위반하는 것이 되는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그대로 믿는 유대인들 전체가 예수님께 등 돌리도록 할 수 있는 좋은 구실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함정에 빠진 예수님은 오랫동안 침묵하시며 한 가지 이상한 행동을 하십니다.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예수님의 침묵의 움직임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모여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손가락이 쓰고 있는 글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 글이 무엇인지 어떤 내용을 쓰셨는지는 성경이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추해서 이해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글이 모여든 사람들의 죄들을 리얼하게 적으셨을거라고 이해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죄가 그곳에서 발견되고 그 글을 보면서 양심에 찔림을 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손에 든 돌을 던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모여 들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그들은 한 여인을 끌고 온것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엄청난 죄인이였고 살아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예수님을 걸고 넘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말의 자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이 여인을 살리기 위해 바닥에 글을 새겼습니다. 어떤 사람도 이 여인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가엽게 여기지도 않았고 저주받은 죄인으로만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을 용서받고 새롭게 되어야 할 가엽은 사랑의 대상으로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역시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우리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마 5:44에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제자인 베드로 역시 사랑에 대해서 썼는데 그는 벧전 4:8에서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게 무슨 의미일까요? 오늘의 본문 말씀처럼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인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 죄가 덮여진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요? 그 사랑의 손길이 바닥에 글을 새기지 않았다면 여인은 어떻게 되었을 까요? 거기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폭로하셨던 예수님의 사랑의 외침이 없었더라면 여인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신약시대 최고의 선교사이며 학자였던 바울은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전서 13장을 기록했습니다. 이 장은 특별히 사랑의 장이라고 불립니다. 그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 합니다.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의 최고봉이신 우리 예수님은 그 사랑을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어떻게 보여주셨을까요?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으셔도 되었습니다. 얼마든지 빠져 나갈 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열두 영도 더 되는 천사들을 부릴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이 능력의 주님은 사람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대 제사장의 무리에게 친히 잡혀 주셨고 자신이 이 일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죄와 사망에 빠져 있는 인간들을 위해 이 일을 이미 작정하셨고 예수님은 아버지인 하나님께 순종하여 이 땅에 오셔서 최고의 사랑으로서 자신의 몸을 인간들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드려진 제사는 흠 없고 깨끗한 한 마리의 어린양이 아니면 하나님께 제사드릴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조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한 마리의 양에게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죄를 전가 시켜서 제물이 대신해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죄는 용서 받는 것입니다. 생명은 생명으로 갚는 것 입니다. 죄의 대가는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사망이라는 가장 무서운 형벌이 내려졌습니다. 그 형벌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 형벌의 무게 만큼의 대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대가 만큼의 중요성을 지닌것은 생명 밖에는 없습니다. 부와 재물과 권세는 절대로 미칠 수 없는 소중한 것이 생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제사라는 방법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셨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드리던 제사는 한번의 효력밖에 지니지 못하는 제한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죄를 짓고 나면 또다시 양을 잡아야지 그 죄를 용서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약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하나님의 예비하신 영원한 제사가 이 땅에서 드려지게 됩니다. 죄 없고 흠 없는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 분을 증거하기 위해서 그의 길을 예비하라고 보내어졌던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였는데 그는 이렇게 세상에 선포합니다.

 

1:29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상 죄, 우리 자신의 죄를 예수님께서 친히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대신 해서 죽으셨고 그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는 하나님께 용서받고 용서받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인에서 의인이 되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인이 됨을 알게 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간음한 여인을 구출하시고 사랑으로 그 죄를 덮어주셔서 용서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또한 사랑의 최고 표현이라고 불리는 십자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사랑하신 주님의 말씀이 여기에 있습니다.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우리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사람을 죽이고 정죄하고 깍아 내리기 위해 율법의 계명을 악하게 이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새 계명을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또한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요일 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우리가 사랑을 하지 않을 때 어디에 속한 것입니까? 하나님께 속한 것일까요?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사랑을 행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랑이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고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사랑하는 자리에 있습니까? 아니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자리에 서 있습니까?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정말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며 사랑의 손을 내미는 자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매일 매일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정말로 매력적인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쁜 남자 신드롬처럼 매일 찡그리고 화내고 폭력적인 사람이 매력이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 질문했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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