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_느헤미야
우리에게 내려놓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1)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계획과 능력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2) 우리의 목숨을 내려놓고
3) 시간을 내려놓고
4) 우리 자신의 미래를 내려놓고
5) 생명과 안전에 대한 걱정들까지 내려놓고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광야라는 어려운 시간을 겪을 때에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이토록 어려운 시기와 환경과 시간을 주시는지 의아해 한다. 하나님은 왜 우리가 그토록 메마른 광야의 땅을 거쳐 가도록 하시는가? 왜 하나님은 바벨론에 잘 살고 있는 느헤미야를 척박하고 메마른 광야와 같은 예루살렘으로 부르셨는가? 왜 역사의 중심이라고 여겨지는 바벨론 대 제국의 핵심 신하의 자리가 아니라 변방 변두리 촌구석 같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땅으로 느헤미야를 부르시고 인도하시는가? 우리는 살면서 이런 의문에 늘 부딪치면서 살아간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슬픔과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절망이 오는데도 막아주지 않으셨을까?
하나님은 광야에서 우리를 다듬어 가신다. 광야의 생활은 굉장히 단순하다. 그곳에서는 다른 복잡한 것들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길 기회조차 없다. 더 이상 오락도 없고 이야기할 친구도 없다. 더 이상 거기엔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도둑질해가는 가치 있는 것도 없다.
하지만 사단의 전략은 분명히 현대 사회에 사는 믿는 사람들에게서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교활한 사단이 우리가 성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 전략이 무엇인가? 혹시 멋진 화분위에 미니어쳐 같은 소나무나 다른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걸 본적이 있는가? 그런걸 분재라고 부른다. 이 분재를 만드는 방법은 굉장히 간단하다고 한다. 어떻게 만드냐 하면은 가장 큰 줄기를 잘라버리고 잔가지들만 남겨두면 나무가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조그만 그대로 계속해서 현상유지를 한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사단은 우리의 큰 줄기를 잘라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우리에게 그 큰 줄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다. 우리의 대적들은
예배이다. 기도와 말씀과 전도로써의 증인의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바쁘게 만들고 일이 생기게 만들고 약속이 생기게 만들고 잠들게 만들고 피곤하게 만들고 절제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배의 삶이라는 큰 뿌리가 잘린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갓난아기와 같은 믿음과 신앙 그대로 있게 되는 것이다. 아기가 자랄 때에 그 부모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다. 만약에 아기가 자라지 않는다면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평생을 갓난아기인체로 살아간다면 그건 비정상이지 않는가? 자라지 않는 아기는 부모의 근심거리다. 그래서 병원에도 데려가고 온갖 좋다는 처방도 다 받아보게 할 것이다.
예전에 다녔던 교회에서 사랑부라는 장애아동 부서에서 한 아이를 맡고 있었다. 이 아이는 자폐증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는데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그 아이가 하는 행동은 우리가 보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 여러 가지 문제행동들을 가지고 있었다. 손을 흔든다든지 머리를 흔들고, 갑자기 떠듬떠듬 이야기 하고 펄쩍 펄쩍 뛰기도 하고 뛰쳐나가기도 하고 도저히 종잡을 수 없었다. 그 아이의 동생도 역시 자폐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게 사실지 상상이 갔다. 그 어머니를 자주 교회에서 봤는데 수요 기도회 때마다 하나님께 어찌나 간절하게 기도하는지 정말 마음이 아플 정도였다.
사단의 전략은 우리가 자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결국은 교회를 떠나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기억하자.
사단의 전략과는 반대로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향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된 우리를 광야로 부르신다. 광야에는 오로지 나와 하나님과의 일대일 만남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때에서야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복잡한 세상에 있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보다 광야에서 대화하기를 더 좋아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부드럽고 세밀하고 그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의 관심은 온통 하나님께로 향하게 된다. 나 자신을 향했던 모든 마음과 의지와 힘들이 그때서야 하나님을 향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참으로 광야는 기도의 학교이며 이곳으로 부르심은 당신의 자녀가 당신의 말씀을 듣고 당신이 하시고자 하는 일에 동참시켜 그를 세상으로 다시 보내기 위해서이다.
광야의 학교를 거쳐간 무수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세상 가운데 나타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다. 광야를 헤메이며 하나님을 만난 엘리야가 있었다. 선지자 사무엘에게 왕으로 기름부음 받았음에도 10여년이 넘도록 광야의 길을 걸었던 다윗 또한 이 학교 출신이다. 그는 이 학교를 우수한 성적에 졸업했다.
다메섹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도 다시 몇 년을 광야에서 보내며 하나님의 일을 준비했던 사도 바울 또한 광야학교 출신이다.
2) 광야는 또한 내려놓음의 장소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오늘 본문의 느헤미야처럼 자기의 할 일과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알 수 있는가? 그 해답은 광야로 들어가는데에 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 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지 확인하고 세상으로 다시금 나와서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그것이 크리스찬의 인생이다.
가야할 길, 가야할 바를 몰라 고민하며 헤메고 있는 여러분, 광야로 나아가자.
예루살렘을 위해 무슨 일을 하실 건지 느헤미야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넣어주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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