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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_고린도전서 12장 14-26절(고전 12:14-26)_중고등부 설교

by reviewer_life 2014.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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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_고린도전서 12장 14-26절(고전 12:14-26)_중고등부 설교

 

 

 

오래전에 영국에 있던 한 부자가 신문에 엄청난 상금을 준다는 광고를 했습니다. 이 상금을 얻기 위한 조건은 부자가 낸 문제의 해답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낸 문제는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한국 지리로 치자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장 빨리가는 방법을 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상금에 눈이 어두워서 부자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자신만의 모든 지혜를 짜내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혈투를 벌였습니다. 특히나 수많은 학자들의 노력은 눈부신것 이었습니다.

드디어 부자가 정답을 발표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들 부자의 한 마디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자가 말하길 런던에서 리버풀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좋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친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우리 NGL 공동체는 신앙의 친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친구도 있을것이고 짜증나는 친구도 있고 나쁜 친구도 있고 이성의 친구도 있습니다. 옛날부터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친구의 목숨을 자기의 생명처럼 아끼는 사람들이 기꺼이 자기의 목숨을 자신의 동료를 위해서 버릴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전쟁터에서는 더했겠죠? 빗발치는 총알과 포탄속에서 앞에 쓰러진 전우를 구하기 위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 우리는 이걸 사랑과 용기와 헌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번주 뉴스에서 한 중학생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 대는 친구를 구하고 자기는 빠져 죽었다는 기사였습니다. 좋은 친구는 죽는것과 사는것 그리고 고통과 고난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말합니다. 자기 필요할 때만 친구라면서 찾아온다면 누가 반갑게 맞이하겠습니까? 이런 좋은 친구, 여러분은 가지고 있나요? 이런 좋은 친구, 같이 있으면 든든하고 힘이 되어주고 내가 어려울 때 마다 도움을 주고 대가는 바라지도 않는 이런 좋은 친구와 함께 가는 길이 세상에서 가장 목적지까지 빨리 가는 방법이라고 부자는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친구 없이 가는 길은 고독과 외로움의 길입니다.

 

저도 역시 부산에서 서울까지 매주 빨리 가려고 KTX를 타고 신나게 달렸습니다. 맨 처음 KTX를 타게 되니까 굉장히 흥분되고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몇십번을 혼자서 외롭게 타고 가는 기차는 정말 지루하고 힘든 시간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가치있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는 마치 한 사람 한사람이 신체기관의 일부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 , , 눈 그리고 다른 많은 신체 기관들이 모여서 한 사람이 이루어져 있듯이 하나의 공동체는 한명 한명이 모여서 이루어진 살아있는 연합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각 각의 지체를 원하시는 곳에 원하시는 대로 두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만약 손이 등 뒤에 달려 있다면 어떨까요? 다리 하나만 있다면 어떨까요? 코가 두개가 있다면...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겠죠? 하나님께서 우리가 생존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부분들을 알맞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생체 매커니즘인 먹고 싸고 자고를 반복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인간의 사회적인 습성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사회시간에 배웠죠? 어디를 가서든지 인간은 한 무리를 형성하고 공동체속에서 섞여서 살아갑니다. 가족이라는 운명 공동체부터 시작해서 친구들과의 공동체와 학교 공동체 나아가서 회사에 들어가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면 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공동체들이 우리 주변을 둘러 싸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를 세운것이 교회입니다. 2000년 전에 처음 교회가 세워질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유대교를 믿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의 주님으로 믿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예수 믿는 신자들이 모여들게 되어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우리 서교회도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9506.25전쟁이후에 부산으로 피난을 떠나 내려온 평양 서문밖 교회의 성도들이 1953년에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교회라는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NGL 예배 공동체도 이렇게 여기에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나누면서 서로 관계를 맺어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혼자 살아가도록 만드신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도록 만드셨습니다. 특히 우리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도록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첫째로 우리는 지체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지체라는 의미는 팔다리와 몸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12:5)

 

모든 그리스도인은 서로 지체가 됩니다. 오늘 읽은 말씀처럼 우리는 몸에 비유되어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때 이미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교회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바로 교회의 일부분입니다. 내가 아파할 때 교회도 아파하고 내가 기뻐할 때 우리의 몸인 교회도 기뻐하는것입니다. 26절에서 말하고 있듯이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진 지체임을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 되어야 합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4:4)

 

공동체가 하나 된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너무도 다양한 사람이 너무도 다양한 환경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욱 결정적인 것은 공동체가 하나 되는 것을 아주 아주 싫어하는 사단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단과 마귀의 목표는 그리스도인들의 연합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을 방해하고 훼방 놓는 것이 목적이고 사명입니다. 우리는 이런 악한 권세를 막을 수 있는 힘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을 품을 때 그런 힘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17장에서 제자들이 연합하여 하나 되게 해달라고 아버지께 간구하셨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17:11)

 

그리스도인의 하나됨은 복음의 본질을 나타냅니다. 요한복음 15:5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는 말씀으로 우리가 또한 예수님과 함께 붙어 있는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붙어 있지 않는다면 아무 쓸모도 없는 마른 가지처럼 그저 불에 쑤셔 넣는 존재가 됨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포도 나무가지가 그 줄기에 붙어 있지 않으면 생명을 잃어 마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말라 비틀어져 죽어서 땔감으로 밖에는 쓸수 없고, 그리고 다시는 열매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연합된 지체인 우리는 바로 생명의 근원이신 분과 붙어 있다는 말입니다. 무한한 생명 양분을 그분으로부터 공급받고 충만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이루시려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우리로 그런 생명을 충만히 누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오케스트라에 있어서 지휘자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수많은 악기들이 모여서 자기 마음내키는대로 제각각의 음색과 리듬으로 연주하게 된다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지휘자가 단 위에 서서 지휘봉을 휘두르게 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악보 노트에 그려진 기호들을 따라서 저마다 악기들이 자신의 개성있는 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소리는 서로 어울리기 시작하고 다른 소리 인데도 불구하고 점점 일치되어 하나의 웅장한 소리가 되어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합니다. 우리는 각각 다른 소리와 역량을 가졌지만 예수님 안에서 연합되어 예수님의 지휘봉을 바라보고 그 움직임에 맞추어 우리 자신을 연주해 갈 때 우리인생 최고의 노래를 연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13:34)

 

이것은 우리 주님의 명령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심지어는 사랑하기 힘든 사람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먼저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 증거입니다. 마른 가지 처럼 불속에 던져질 우리의 운명을 예수님을 통해서 바꾸신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을 입은 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외우는 주기도문을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처럼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부분에서 처럼 우리가 남을 미워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할 때 우리는 도저히 하나님께 내 죄를 사해 달라고 요청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8:23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한대 26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32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그리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몸이기 때문이고 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로 우리는 서로 덕을 세워야합니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살전 5:11)

 

 

서로 격려하고 권면하고 서로를 세워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서로 겸손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겸손이 무엇입니까? 겸손은 강한자가 하는게 겸손입니다. 전교 꼴등이 저는 별로 공부 못해요하는 것과 전교일등이 저는 별로 공부 못해요하는 것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겸손은 실력이 있을 때 비로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은 겸손하게 다른 사람을 세워 줄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실력자인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모든 사람들은 교회의 부흥에 헌신해야 합니다. 교회는 성경 말씀과 하나님을 믿고, 서로 사랑하며 돌보며,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위해 기도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 기도하고 섬기며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좋은 친구이신 예수님과 또한 우리의 좋은 친구 된 여기에 모인 모든 학생들과 우리 선생님들이 함께 모여 즐거운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엔젤 공동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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