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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정보/중고등부설교

회복된 예배_느헤미야 9장 23~33절_중고등부 청소년 설교

by reviewer_life 2014.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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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된 예배 Ⅱ_느헤미야 923~33

 

 

23 주께서 그들의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시고 전에 그들의 열조에게 들어가서 차지하라고 말씀하신 땅으로 인도하여 이르게 하셨으므로

24 그 자손이 들어가서 땅을 차지하되 주께서 그 땅 가나안 주민들이 그들 앞에 복종하게 하실 때에 가나안 사람들과 그들의 왕들과 본토 여러 족속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 임의로 행하게 하시매

25 그들이 견고한 성읍들과 기름진 땅을 점령하고 모든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과 판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허다한 과목을 차지하여 배불리 먹어 살찌고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

26 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지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주를 심히 모독하였나이다

27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 넘기사 그들이 곤고를 당하게 하시매 그들이 환난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에게 구원자들을 주어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거늘

28 그들이 평강을 얻은 후에 다시 주 앞에서 악을 행하므로 주께서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 버려 두사 원수들에게 지배를 당하게 하시다가 그들이 돌이켜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여러 번 주의 긍휼로 건져내시고

29 다시 주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경계하셨으나 그들이 교만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에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며 주의 규례를 범하여 고집하는 어깨를 내밀며 목을 굳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30 그러나 주께서 그들을 여러 해 동안 참으시고 또 주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의 영으로 그들을 경계하시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열방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고도

31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32 우리 하나님이여 광대하시고 능하시고 두려우시며 언약과 인자하심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여 우리와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조상들과 주의 모든 백성이 앗수르 왕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당한 모든 환난을 이제 작게 여기지 마옵소서

33 그러나 우리가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께서는 진실하게 행하셨음이니이다

 

 

 

 

 

현대인의 특징은 한마디로 피곤함과 분주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해야할것 배워야 할것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아졌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는 사람들은 다른 곳에 집중했다. 여러가지 운동이나 독서와 또 다른 여타의 취미생활들을 누리면서 살았다. 그런데 요즘은 컴퓨터가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영화나 미드를 다운 받아보고,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정보를 뒤지기도 하며, 친구들과의 만남도 싸이월드를 통해서 만나거나 버디버디, 네이트온을 통해서 메세지를 주고 받습니다.

 

그리고 핸드폰도 우리 삶에서 떼어 놓지 못하는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핸드폰 역시 분주하고도 피곤한 삶을 만들어 가는데 충분히 일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번은 버스를 타고 가고 있는데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이는 곳곳마다 핸드폰을 꺼내들고 문자를 보내고 있는 사람, 통화중인 사람, 게임을 하는 사람, DMB 보는 사람, Text 소설 보는 사람, 음악 듣는 사람 등 버스 안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핸드폰을 이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핸드폰이 없으면 답답하고 죽을것 같다고 표현하는게 요즘 우리의 모습입니다. 독도 잘만 사용하면 약이 될 수 있지만 좋은 약도 잘 못 사용하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고 모두가 바쁜건 아닙니다. 하루종일 한통의 전화나 문자도 안오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TV도 우리의 삶에 분주함과 피곤함을 주고 있는 주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TV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애국가가 울릴 때 까지 티비 보는 사람이 혹 우리들 중에 있지는 않습니까? 요즘은 유선방송이나 헬로우티비 같은 24시간 방송까지 있어서 우리가 자야할 시간을 방해합니다. 때로는 TV 본다고 약속시간에 늦게 가버린 적은 없었는가?

 

이밖에도 많은 현대의 편리함을 주고 시간을 절약하게 해주는 많은 것들이 오히려 현대인의 삶을 더욱 분주하게 만들고 있고, 피곤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이러한 분주함이 주는 또다른 해악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도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할 공간 또한 너무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교회에 나오면 마음껏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그나마 겨우 위안을 삼는다.

 

E. M. 바운즈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쁜 사람과 친하지 않으시다. 급하게 와서 급하게 가는 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친한 관계를 가지기를 원하시며 오직 하나님과만 함께하는 시간을 내기를 바라고 계신다.”

 

오늘 말씀에 느헤미야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다. 그들은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여러 구절의 간절한 기도문은 성경에서 최고 긴 기도에 속한다.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말씀에서 그들이 기도 할 때에 옛날에 있었던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이야기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께 자신들의 죄를 자복했다고 합니다. 자신들과 자기 조상들이 저지른 죄악들에 대해서 그들은 하나님께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그때에 그들은 낮 시간의 사분의 일은 율법을 듣는데 사용하였고, 또 낮 사분의 일은 기도하며 회개하는데 시간을 사용했습니다.

 

9:1 그 달 이십 사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2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하고

3 이 날에 낮 사분지 일은 그 처소에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지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왜 그들은 갑자기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을까요? 왜 그들은 자기 몸이 불편할 정도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까?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고 서서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이 지은 죄를 왜 회개하고 있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관계가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소중해 졌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그들 삶에 분주함과 피곤함은 여전했을 것입니다. 먹고 살기위해 일도 해야 했고, 공부도 해야 하고, 자식도 키우고, 가족도 돌보며, 집도 건축하고 땅도 일구며 많은 관계와 많은 스케쥴이 잡혀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모든 일들을 다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광장에 모여 들었습니다. 그들의 분주함과 중요한 일들도 다 내려놓고 광장에 모여 율법을 듣고 기도하는 일을 택했습니다. 그들은 기도하며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죄에 대한 벌로써 멸망당하며 포로가 되어야 했지만 다시금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지면서 그들은 하나님을 더욱더 알기 원했고 그분과 함께 하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이 알기에 기도는 무엇입니까? 제가 생각하는 기도는 특권입니다. 우리는 기도라는 특권을 늘 가지고 살아갑니다. 마치 보물상자 하나와 열쇠를 가지고 있는것과 같습니다. 기도라는 열쇠를 사용해야지만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보물을 꺼낼 수 있습니다. 그 보물은 바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적 교제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열쇠를 사용하도록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절벽 가까이로 부르셔서]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 그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절벽 가까이로 나를 부르셔서 다가갔습니다.

절벽 끝에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더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절벽에 겨우 발을 붙이고 서 있는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때까지 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가끔 우리 인생에 고난이 찾아옵니다. 마치 벼랑 끝에 몰려 있는 듯 한 기분이 들 정도로 비참하고 치열하고 힘든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거친 파도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고난이 그냥 오는 고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계속해서 고난과 역경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고난당하는 이유는 성경이 말해주듯이 그들이 계속해서 범죄하였고 애굽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고난을 주신 이유는 그들이 그들의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다시금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셨고 주의 선지자들을 끊임없이 보내어서 그들을 설득하려 하셨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사람처럼 고난에 낙망하며 낙심하여 죽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상황속에서도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날개가 있는 줄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게 하여 주시기 위해서 고난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고난이라는 돋보기로 나의 참 모습을 보게 하시고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에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분이 지으신 걸작품임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이 고난의 신비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의 신비를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때로는 고난도 허락해 주시는것을 여러분도 잘 아실것입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 다윗은 10년을 넘게 미친 왕 사울 밑에서 쫓겨 다녀야 했습니다. 광야를 헤메며 미친척을 해서 도망하기도 하고, 자기를 따르던 사람들의 돌에 맞아 줄을 뻔도 하였습니다. 자기 가족을 한꺼번에 다 잃어 버릴 뻔도 하였습니다. 그럴때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렸습니다.

 

다윗의 시편 23편은 다윗의 믿음을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것이 다윗의 고백이며 그의 위대한 기도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기도를 하고 살아갑니까? 여러분이 어렵고 힘들 때도 기도하겠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기도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하는 연인과 교제하고 사귀듯이 하나님과의 관계도계속적인 대화와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들이 시간을 가지고 기도해 볼 것을 권유합니다. 하루에 첫 시간에 드리는 기도가 가장 좋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기도해 보십시오. 그날 하루는 다른 하루들과 다른 의미와 느낌으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새벽 일찍 일어나셔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삶속에서 휴대폰과 게임과 티비와 컴퓨터와 같이 우리의 삶을 분주하게 만들고 피곤하게 만드는 물건들은 되도록이면 끄도록 여러분의 삶을 조정하시기를 바랍니다. 학교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기도를 합시다. 하나님께 그날 하루 학교에서의 삶을 지켜주시고 인도해달라고 요청합시다. 가정에 돌아오면 또 기도합시다. 기도라고 해서 거창하게 무릎꿇어 엎드려 하는 기도만 있는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으로 하는 기도도 있습니다. 그러니 어디에 있든지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 열린 창문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창문을 열고 하나님께 속삭이며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고 그분을 더욱더 깊이 알아 갈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여러분의 인생을 180도 바꾸어 주는 열쇠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이 열쇠를 사용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늘 기도로 하나님께 더욱 더 가까이 나아가는 우리 학생회 공동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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