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_느헤미야 6:1-9
느 6:1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대적이 내가 성을 건축하여 그 퇴락한 곳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라
2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
3 내가 곧 저희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 가겠느냐 하매
4 저희가 네번이나 이같이 내게 보내되 나는 여전히 대답하였더니
5 산발랏이 다섯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내었는데
6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네가 유다 사람들로 더불어 모반하려 하여 성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7 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
8 내가 보내어 저에게 이르기를 너의 말한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
9 이는 저희가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저희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정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시험과 약점을 이기는 믿음의 삶.
세상을 살다보면 온갖 종류의 시험과 어려움과 만나게 됩니다. 또 온갖 종류의 약점들이 우리의 삶을 괴롭게 합니다. 그러한 순간에 여러분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냐에 따라 여러분의 인생을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만일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포기해 버린다면 여러분은 상처를 입고 쓰러지게 될 것입니다. 마치 복싱에서 선수가 상대편의 쏟아지는 펀치를 견디지 못하고 뒤로 밀리다가 코너에 갇히게 되고 빠져나갈 틈이 없이 밀리다가 공이 울리기도 전에 쓰러진다면 그 사람은 대결에서 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련과 시험에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포기해 버린다면 반드시 여러분의 인생은 후회를 남기게 됩니다.
또한 약점이라는 측면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매일 살아갈때에 자신의 수많은 약점들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사람마다 제각각 자신에게 약한 부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먹는 유혹에 약할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도박을 끊을 수 없고, 또 다른 사람은 쇼핑의 유혹을 견딜 수 없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술과 담배에 대한 유혹에 약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적인 유혹에 잘 넘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몇 가지 예들 밖에 들지 않았지만 이 외에도 수많은 약점들이 우리 인생에서 우리를 휘어잡고 놓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적들은 어떻게 해야지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일에 전심으로 일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손이 피곤하게 만들고 낙심하게 만들고 좌절하게 만들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전략은 너무도 우리에게 효과적으로 먹혀듭니다.
◈ 3 내가 곧 저희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 가겠느냐 하매
느헤미야의 대적들이 그에게 사람을 보내어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성 중간쯤인 오노 평지로 오라고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왜냐하면 대적들이 예루살렘 성벽 공사가 이제 거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고 성문만 놓으면 되는 순간이라고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마치 평화조약이라도 할 것처럼 느헤미야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묘하고 간사한 전략으로 느헤미야를 제거하기 위해 술수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때에 이스라엘의 총독이며 영적리더인 느헤미야의 대답과 태도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고 응답합니다.
느헤미야는 소리 없이 다가오는 위험과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을 때에 분명한 비전과 확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을 가지는 사람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 비전의 사람은 깊은 뿌리를 가진 나무와 같습니다. 태풍이 불어와도 끄떡하지 않는 거목과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친다고 해도 깊이 있는 뿌리는 나무를 지탱해 주고 다른 나무들이 쓰러질 때에도 요동치 않습니다. 이것이 분명한 사명을 가진 사람, 비전의 사람, 목적이 이끄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조그만 요트가 풍랑에도 쉽게 뒤집어지지 않는 이유를 아십니까? 무게 중심이 수면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배 중심에 무거운 것을 두어 쉽게 뒤집어 지지 않게 고안한 것인데, 요트의 바닥에는 바닥짐(Ballast)이라는 무게 중심을 둔다고 합니다. 확고한 비전의 사람, 거룩한 리더십의 사람도 마찬가지로 요동치 않기 위해서 무게 중심이 필요합니다. 나무에 깊은 뿌리가 필요하듯, 그리고 요트에는 바닥짐이 필요하듯이 리더에게는 이러한 무게 중심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무게 중심에는 반드시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의 중심에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바닥짐, Ballast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떠한 일이나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적들이 코앞 까지 쳐들어 올 때에도 그는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였고 최선을 다해서 대처했고,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이것이 무게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있는 사람의 행동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바닥짐이 와야 할 가장 중심자리에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다른 것들로 채워버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가장자리나 다른 곳으로 밀어 버립니다. 어느 정도는 위태위태하게 항해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무게 중심이 가벼운 다른 것으로 바뀌었을 때는 조그만 파도에도 쉽사리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모래위에 지은 집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모래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조금만 흔들려도 무너져 내립니다. 하지만 반석위에 지은 집은 요동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단적인 예를 들어 볼까요?
무게의 중심이 있어야 할 자리에 돈으로 가득찬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는데 맘몬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재물과 하나님을 한자리에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닥짐의 자리에 돈을 놓아둔 사람에게 풍랑이 찾아오거나 비바람이 불 때에 만일 돈이나 재물이 사라졌을 그때에는 그 사람의 모든 소망도 사라져 버리게 되고 맙니다.
어떤 사람은 바닥짐이 있어야 할 자리에 친구나 사람으로 채워두는 사람이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안전과 욕구를 다 채워줄 친구를 찾아서 계속해서 자기 옆에 두고 소유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풍랑이 찾아오고 태풍이 몰아칠때에 모든 이들, 자신이 믿고 의지하고 가지려했던 모든 사람들이 떠날 때에는 그는 결국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파워, 즉 권력을 그 자리에 놓아둡니다.
그 밖에도 수많은 욕구들과 욕망들이 항상 그 자리를 찬탈하려고 합니다.
무게 중심이 하나님으로 채워진 사람은 어려움이 와도, 염려가 와도 걱정이 와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지으시고 만드신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어떠한 시련이나 역경, 어려움과 고난이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는 힘은 우리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것임을 기억합시다. 오늘 느헤미야를 보면 사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적들이 더욱더 교묘하게 다가와서는 마치 스나이퍼가 목표물을 포착하고는 적장을 암살하듯이 그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위험한 자리임을 직감으로 알고 있던 느헤미야는 그 자리에 가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대적들의 편지를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5번째로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는 봉하지 않은 편지라는 것입니다.
봉하지 않은 편지가 무슨 의미를 지니겠습니까? 우선 먼저 그 안에 무슨 내용이 담겨져 있는지 부터 살펴봅시다. 한마디로 느헤미야가 페르시아 왕을 반역하고 모반을 계획하고 있다는 모함이 적혀있는 Black Mail 협박 편지입니다.
혹시 행운의 편지라고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한 때 꽤나 유행했던거였는데, 누가 그 편지를 받으면 7사람에게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내야 하고 만일 보내지 않을 시에는 저주가 임한다는 꽤나 흥미로운 편지입니다. 느헤미야가 받은 편지와 비교해 봤을때 이런 행운의 편지는 애교로 보일 정도입니다. 느헤미야를 비방하는 내용들이 조목조목 적혀있고 그가 행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 그 증거라고 날조하고 있는 내용들이 적혀있었습니다.
이런 내용이 적혀져 있는 편지를 다섯번째로 보낸 산발랏은 이번에는 봉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편지를 봉인하지 않았다는 뜻은 누구든지 그 편지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펼쳐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편지들은 반드시 봉인을 해서 전달자나 제 3자가 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은 관례인데 산발랏은 일부로 편지를 봉인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의도가 충분히 짐작이 가지 않나요? 그는 분명하게 누군가 그 편지를 보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소문이 퍼져나갈 것을 기대했던 것 입니다. 또 느헤미야와 백성들이 산발랏 자신의 의중을 파악하고는 두려워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였습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왕실의 신하입니다. 그것도 왕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의 이러한 배경은 그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약점이 될 수 도 있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난 모반 사건들은 측근들을 통해서 대부분 일어납니다. 그래서 왕들도 가장 경계하는 대상들은 자기 가족들과 고위 신하들이 우선적입니다. 대부분의 유명한 반란들은 외부에서 보다는 내부에서 일어났고 역사적으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습니다.
이런 왕실 내부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외부에서 들려오는 가까운 신하에 대한 소문은 느헤미야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컸습니다. 왕은 가능성이 있는 모든 반란에 대해서 염려할 것이고 그러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해결하려 들것입니다. 그래서 대적들은 이러한 느헤미야의 약점을 파고들었고 봉인되지 않은 편지를 전령에게 맡겨서 느헤미야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느헤미야의 반응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그런 모함과 비방을 받았을 때에 느헤미야는 대적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밝히고 그 거짓말의 이면에 있는 의도까지 파악하고 있습니다.
9 이는 저희가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저희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정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그 의도들은 모함과 비방으로 느헤미야와 그의 배성들을 두렵게 만들고자 했고 그래서 더 이상 일을 진행 할 수 없게 만들어서 성벽 공사를 방해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굉장히 교묘하고도 영악한 술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그들의 영리한 전략도 느헤미야의 비전과 맡은 사명을 멈추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벽의 공사가 끝날 때 까지 쉴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고 예루살렘 성벽 건설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백성을 모으고 다시 한 번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거룩한 나라로 만들기 위한 놀라운 일을 성취하는 비전을 품고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과 꿈을 가지고 살아갈 때에 느헤미야가 당하는 이런 교묘하고도 교활한 대적들의 계략에 걸려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대적들이 참 어이가 없는 일들을 당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단은 정말이지 영리합니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경로와 통로로 우리를 공격해 들어오고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가장 영향력 있는 장소에서 매복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를 들어 보자면 우리가 믿음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에 그들은 그 때를 노립니다. 교만에 빠뜨리기도 하고 어떨 때는 분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꼬이게 만들어서 서로 적대적으로 싸우게 만듭니다.
이것이 지금 여러분과 제가 살고 있는 세계의 이야기 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더 이상 눈에 보이는 K1같은 격투나 다이하드 같은 총알 전투가 관건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넓은 범주의 싸움입니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리들의 본질적인 싸움은 더 이상 피 튀기는 것이나 육체가 있는 것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꽉 잡고는 흔들려고 하는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자들과의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인 예루살렘성에서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비방과 모함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자신의 아킬레스건에다가 총알을 박아넣으려고 하고 있는 산발랏의 다섯번째 편지에 어떻게 그는 대처합니까?
정면으로 대적들을 맞서서 진실을 이야기하고,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대적들의 뜻처럼 되지 않게 되게 해달라는 간구의 기도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라고 하나님께 외치고 있습니다. 대적들의 손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결백한 느헤미야 자신의 손을 잡아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리더십의 사람 느헤미야의 본질입니다.
그의 바닥짐 Ballast가 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는 일하고 있었고 또한 그 일을 위해서 대적들의 견고한 진들을 파괴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느헤미야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붙들고 있는 바닥짐은 무엇인가? 그 무게 중심이 내 인생에 폭풍이 다가올 때에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만한 것인가 한번 고민해 봅시다. 정말로 견고하게 나를 붙들어 줄 수 있는 생명선이 되어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인가? 내가 벼랑 끝에 매달려 있을 때에 나를 안전하게 지탱해줄 수 있는가?
두번째로 우리는 "이제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던 느헤미야의 기도처럼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기도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나는 정말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서 적들의 견고한 함정들과 계략들을 부수어 주실것을 기도로서 구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이전에 대적들의 공격에 주춤하고 넘어 졌더라도, 오늘 다시 한번 더 하나님 안에서 제대로 살아가고자 결심을 합시다. 나를 걸고 넘어지려는 모든 악한 공격들에 대해 전심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해결해 주시기를 느헤미야와 같이 기도하는 사람이 됩시다.
그래서 이번 한주간도 삶의 중심이 되어주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우리 엔젤 공동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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