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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_창세기 37장_중고등부설교

by reviewer_life 2014.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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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_창세기 37장_중고등부설교


창 37:1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하더라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오늘은 꿈꾸는 자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거울의 기능은 사물을 비추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울을 통해서 자기의 예쁘고, 멋진 모습을 보고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구약의 요셉은 신약에 있는 예수님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성경에서 요셉은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셉의 이야기를 보면서
요셉이 그렇게 어려운 상황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어떻게 유혹을 이기고 어떻게 감옥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선한 일을 했는지를 보면서 많은 도전과 힘을 얻곤합니다.
그리고 더 더욱 사람들은 절망 끝에 힘든 위기의 상황 끝에 왕과 같이 되는 요셉을 보면서 희망과 소망을 품곤합니다 .

 

그런데 오늘 나누고자 하는 요셉의 이야기는 좀 더 다른 시각에서 다루고자 합니다. 방금 전까지 소개했던 요셉의 삶을 위인전기적인 눈으로 볼 때 위대한 인물이 신을 믿고 위기를 극복하고 잘 먹고 잘 살았더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요셉은 착하게 살았고 성실하게 살았으니까 당연히 뿌린대로 거두듯이 그렇게 총리가 되는게 당연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약 ‘오늘 설교 주제는 우리가 다 요셉처럼 착하게 살아갑시다!’하고 설교를 한다면 어떨까요? 이렇게 설교하는 것은 도덕시간에도 들을 수 있고, 강당 앞에 서신 나이 지긋한 교장선생님의 말에서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서 무엇을 살펴보아야할까요? 우리는 오늘 이것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요셉과 예수님처럼 부모님을 공경하자.


당시에 요셉은 17살의 어린 나이였습니다.(!) 요셉은 아브라함의 증손자이고, 이삭의 손자이며, 야곱의 열한번째 아들이었습니다. 2절에 보면 요셉은 형들의 잘못들, 악한 행동을 아버지인 야곱에게 고자질을 한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약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할까요?
우리는 2절을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첫 번째로 요셉은 형들이 죄악을 행할 때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요셉의 반응입니다. 죄에 대해서 요셉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아버지 야곱에게 달려가서는 형들의 죄를 알려드립니다.
지금 여러분이 느끼는 요셉은 어떤 사람입니까? 1번 착하고 멋진 아이다. 2번 고자질 쟁이에 이기적이다.

성경은 단순히 고자질쟁이의 어린 시절을 묘사하고자 한걸까? 그래서 “우리는 요셉처럼 고자질하는 인생은 이렇게 됩니다. 고자질은 죄입니다.” 하고 이렇게 성경을 해석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설교 제목은 이렇게.. “고자질 하면 개고생이다.”라고 정해야 하겠죠?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본문 이 말씀 방금 이 구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지금 무엇을 말씀해 주고 계신걸까요? 우리 좀더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를 읽으면서 요셉의 삶을 살펴보면 요셉의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성격이죠?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거기서 보디발이라는 이집트왕의 신하의 집에 팔려가게 됩니다. 거기서 요셉은 정말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면서 보디발과 다른 종들의 신뢰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형통케 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요셉은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번 위기는 또다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을 보내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불장난을 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그때 요셉이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우리 주인님의 아내입니다. 내가 어떻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할 수 있겠어요?”(Ge39:7~10)

 

요셉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할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는 표현과 같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경외는 "공경하면서 두려워함."이라고 정의 내립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솔직한 내 모습은 어떠합니까? 나는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합니까?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심판의 하나님이신데 우리는 가끔 이 사랑의 하나님만 찾고 심판의 하나님은 까맣게 잊어 버리곤 합니다.

요셉은 아버지한테 형들의 잘못을 고해 바쳤습니다. 어쩌면 형들하고 같이 속닥속닥해서는 같이 아버지 몰래 나쁜짓을 할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내가 어찌 하나님께 득죄할 수 있겠습니까?“내가 어찌 아버지께 득죄하리요.”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요셉이 하물며 육신의 아버지도 역시 두려워하고 공경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를 경외할 줄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신약성경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 1서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사람 요셉은 아버지를 두려워하며 공경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 중 가장 핵심은 십계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 중에서 제 5계명이 무엇입니까?(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십계명 가운데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과 명령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을 정말로 공경합니까? 아니라면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혹시 우리는 어떤 조건들 때문에 우리 부모님을 공경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우리 엄마는 맨날 잔소리만 해요. 우리 아빠는 맨날 화만 내고 용돈도 안줘요. 우리 부모님은 못배우셔서... 등등의 많은 이유들을 대입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그런 그들이 바로 나의 부모님이라는 것입니다. 나를 고통 속에서 낳으시고 어렵게 어렵게 길러주시고, 내가 아플때 걱정하셔서 잠못이루시고 나를 먹여살리려 뼈 빠지게 일하시는 우리 부모님 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에 났던 뉴스 기사입니다. 동네를 지나가던 어떤 여학생이 아기가 우는 소리를 듣고는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분명 주변에는 유모차 없었고, 애기 엄마로 보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울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울음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발검음을 옮겼는데 앞에 음식물 쓰레기통이 하나 있었습니다. 쓰레기통 뚜껑을 열어서 확인을 해 보았습니다. 안에는 탯줄을 달고 울고 있는 갓낫 아기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을 길러주신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할 수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 역시도 요셉처럼 부모님을 공경했습니다. 눅 2:51에 보면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라고 증거합니다. 히브리서는 좀더 자세히 말하고 있습니다. 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또한 성경은 계속해서 이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엡 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골 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내가 그리하겠나이다”이것이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그리고 부모님께 드려야 할 말입니다.

 

 

2.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왕과 같이 된 요셉과 왕이 되신 예수님.


하루는 요셉이 꿈을 꾸었습니다. 밭에서 곡식을 묶고 있는데 요셉의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번 더 꿈을 꾸게 됩니다. 이번에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처음 꿈을 꾸고나서 요셉은 신이 나서 형들에게 말을 합니다. 형들은 웬 미친녀석이 와서 짖어대느냐는 듯이 요셉의 꿈을 짓뭉개고 맙니다. 그리고는 더욱 더 미워합니다. 아마도 야곱이 안보는 사이에 쥐어 터졌을 수도 있겠죠.

두 번째 꿈을 꾸었을 때 요셉은 거봐라 내 말이 맞지 않느냐며 이번에는 아버지와 형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이번에는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꾸짖습니다. 하지만 요셉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태도는 형들과는 다릅니다. 야곱은 그 말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형들은 시기했지만 아버지는 달랐습니다. 요셉의 꿈은 마치 자기가 왕이 되는 듯한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꿈을 말하였을때 아무도 그 꿈을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요셉을 더욱 미워하고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요셉을 손가락질 하며 “보라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라며 조롱합니다.

우리는 동일한 상황을 신약시대에도 볼 수 있습니다. 거울의 기능이 뭐라고 했죠? 사물을 비추는 것이죠? 우리는 요셉의 여섯 가지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의 사건을 비추어 볼 수 있습니다.


1) 요셉은 야곱에게 사랑받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혔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사랑받는 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덧입으신 분이었습니다. 마 3:16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2) 요셉의 꿈과 예수님의 꿈입니다. 요셉을 대하는 형들의 태도와 예수님을 대하는 바리새인과 대 제사장들의 태도 사이에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좋은 소식,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루기 원하시는 꿈이었고 이것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복음을 선포하시며 갈릴리와 유대땅을 이리 저리 다니시며 병자도 고치고 귀신도 내어 쫓고 기적을 나타내고 수많은 선지자들이 기록했던 수많은 증거들을 보이셨지만 그들은 그런 예수님을 배척하고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들이 미워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 때 문이었습니다. 어떤 말입니까? 자신이 하나님이 아들이라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날 자신이 이 세상을 심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당시 고대 사회의 심판의 권한은 누구에게 있었습니까? 바로 왕에게 있었습니다. 왕의 결정은 한 사람을 파멸로도 생명으로도 좌지우지 할 수 있었습니다. 대 제국 로마의 경우 황제의 결정은 한 나라를 심판하여 파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자신이 바로 그런 왕과 같이 심판을 하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꿈과 같은 말을 바리새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처럼 예수님은 아무런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이란 촌동네 출신에 당시에 유명한 학교 출신도 아니고,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말하자면 메시야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았습니다.

 

3)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은 그런 예수님을 로마라는 당시 세상 권력에 팔아 버립니다. 마치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팔아서 요셉이 노예가 되었듯이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세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로마에 넘겨버립니다. 그들은 은 20개에 요셉을 팔아버렸듯 예수님을 은 삽십에 팔아넘깁니다. (마 26: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요셉과 예수님의 이야기가 너무나 비슷하지 않습니까?

 

4) 요셉은 이제 아버지께 사랑받는 아들에서 비참하고 절망적인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는 절망과 고통 속에서 아픔의 시간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또한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쓰고는  무덤과 같은 지하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이 반란을 일으키려했다는 죄목으로 누명을 뒤집어 씌웠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이라고 정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그 길을 걸을 때에 절망과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언덕길을 오르셨습니다. (이 절망과 고통의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의 죄악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것이 우리의 죄악입니까?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이땅에 오셨다고 스스로 말씀하셨고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중심과 같은 로마의 권력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5) 요셉은 이집트 왕 바로에 의해서 무덤과 같은 지하 감옥에서 탈출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서 삼일동안 무덤에 묻혀 있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를 죽음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입니다. (행 13: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6)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후에 형들과 만났을 때 그들을 다 용서한 것과 같이,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신 왕이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에게 그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요셉의 일생을 통해서 예수님의 생애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림자와 같이 예수님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요셉 한 사람만 그럴까요? 아닙니다. 구약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그림자와 같이 예수님 한분을 비추기 위해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요셉의 삶을 통해서 만나게 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은 왕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다스리는 왕이십니다. 우리를 모든 고통과 절망을 아시는 왕이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과 절망을 친히 경험하신 왕 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아픔을 이해하시고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시간 그런 분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이 꾸는 꿈을 같이 꾸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국이 임하는 것이며, 새 예루살렘 성전이 임하는 것이라고 요한계시록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절망과 고통과 사망이 없는 그 땅으로 부르시는 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주님의 나라를 위해 여러분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친구들을 하나님의 나라에 초대하기 위해서 다음 한주를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브릿지, 다리가 되어 예수님께로 인도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얼마나 기뻐하실지 상상이 되나요? 우리 모두 열심히 준비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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