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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좋은글

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_김종한(金鍾漢)

by reviewer_life 2014.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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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


- 김종한(金鍾漢)

 

 

 

능수버들이 지키고 섰는 낡은 우물가
우물 속에는 푸른 하늘 조각이 떨어져 있는 윤사월(閏四月)

― 아주머님
지금 울고 있는 저 뻐꾸기는 작년에 울던 그 놈일까요?
조용하신 당신은 박꽃처럼 웃으시면서

두레박을 넘쳐 흐르는 푸른 하늘만 길어 올리시네
두레박을 넘쳐 흐르는 푸른 전설만 길어 올리시네

언덕을 넘어 황소의 울음 소리도 흘러 오는데
― 물동이에서도 아주머님 푸른 하늘이 넘쳐 흐르는구료.

 

 


 

 

 

< 감상평 >
이 시는 윤사월의 어느 날, 낡은 우물가에 비친 모춘(暮春)의 정경과 그 곳에서 시적 자아가 한 아낙에게 물을 얻어 먹으며 느끼는 순수한 인정미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시적 자아는 능수버들에 둘러싸인 낡은 우물가를 지나다 우물 속에 비친 푸른 하늘을 본다. 마침 그 곳에서 물을 긷던 한 아낙에게 물 한 모금을 부탁하자 아낙은 아무 말 없이 두레박을 우물 속으로 드리운다. 그 때 마침 멀리서 뻐꾸기 울음 소리가 한가롭게 들려 온다.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남녀가 인적 드문 우물가에서 그냥 우두커니 물을 떠 주고, 받아 마시는 행위가 쑥스럽게 느껴지자, 시적 자아는 아낙에게 공연히 뻐꾸기를 화제로 말을 건낸다. 한가롭고 조용한 봄날 오후에 들려 오는 뻐꾸기 울음 소리는 적막한 봄날의 정경을 이끌어 주는 동시에 어색한 두 남녀 사이에 끼어들어 대화를 열어주는 기능을 갖는다. ‘울고 있는 저 뻐꾸기는 작년에 울던 그 놈일까요?’라는 어리석은 질문에 아낙은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조용히 웃으며 두레박이 넘치게 시원한 물을 길어 그에게 건낸다. 그녀가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것은 푸른 하늘이 비친 맑은 우물물이자, 푸른 하늘처럼 맑고 깨끗한 그녀의 정성스런 마음이며 푸른 전설이다. 낡은 우물이 있는 그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온 그 아낙이 길어올린 것은 다름 아닌 푸른 전설처럼 그윽하고 옛스런 물이요, 그것은 바로 마을의 평화와 안식의 삶을 열어 주던 풍요로운 근원인 셈이다. 이러한 정겨운 분위기에 어울리게 황소의 울음 소리가 멀리서 나직하게 들려 올 때, 아낙이 머리에 이고 가는 물동이의 찰랑이는 물에서도 시적 자아는 푸른 하늘이 비쳐져 있음을 본다.

낡은 우물과 푸른 하늘, 푸른 전설과 황소의 울음 소리로 이어지는 평화로운 어느 농촌의 아름다움이 잘 나타나 있는 이 시는 당시 우물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활 주변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시인 특유의 재치와 섬세한 고유어를 적절히 구사하여 잔잔한 감흥을 전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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