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거룩해야 한다(고전 5:1-8)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부터 4장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교회는 하나'라고 하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바로 깨우치지 못하며, 말씀 사역자에 대하여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교회는 분쟁할 수밖에 없고 나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이렇게 분쟁하고 나뉘면 그 능력을 상실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 아름다움을 상실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의 하나 됨, 즉 통일과 연합을 분명히 이루어갈 것을 말씀을 통해서 가르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교회의 통일성이 교회의 본질이라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 함께 생각을 했습니다. 지상의 교회는 몇 사람이 "우리 한 번 교회를 해 보자!" 그래가지고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 간판을 걸고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림으로 "우리는 교회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교회가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될 것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우리 교회에서 사역했었던 김효준 목사님이 이제 교회를 개척하겠노라 하면서 찾아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11월 둘째 주 토요일에 개척설립예배를 드렸던 것으로 압니다. "개척설립예배를 드릴 때 목사님 오셔서 순서를 하나 맡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리 교회 임직식과 날짜가 겹쳤어요. 그래서 갈 수가 없겠노라고 사양하고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개척설립예배를 굉장히 의미 있게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과거에 자기를 지도했었던 목사님, 또 자기가 사역했었던 교회 목사님들을 모시고 그 목사님들이 순서를 하나씩 맡아 개척설립예배를 드리기를 원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초청할 목사님들이 한 일곱 분 정도가 되더라는 거죠. "그 일곱 분 목사님을 다 청하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면 개척설립예배는 드리는데 교인들은 있는가?" "교인은 없습니다." "그러면 그 개척설립예배에 그렇게 목사님들 여러 분 모시는 것을 서두르지 말고 현재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과 그 교회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일단 드리고, 이후에 전도하고 그래서 교인들이 한 명 두 명 늘고 그리고 난 다음에 내년 봄 부활주일 정도 되어서 성도들이 어느 정도 있는 상황에서 개척설립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겠다." "일단 교회를 시작합니다." 하면서 시작은 할 수 있지만, "이제 우리 교회를 설립합니다." 혹은 "창립합니다." 하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된다는 거죠. 상관없습니다. 그랬더니 "아! 이거 몰랐는데 한 번 가서 상의를 하겠습니다." 그러더니 가서 현재 섬기던 교회 목사님과 상의하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교회 목사님 모시고 그 교회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노라고 전화를 해 왔습니다.
교회를 설립할 수 있지요. 목사 한 사람이 교회를 세우겠다는 뜻을 정하고 개척할 수 있습니다. 혹은 여러 성도들이 "우리가 교회를 한 번 해 보자!" 해서 개척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교회가 되느냐 하는 것이죠. 그것이 교회가 되기 위한 조건들이 있습니다. 교회법에 의한 조건도 있고, 성경의 원칙에 따른 조건도 있는 것이에요.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 간판 건다고 무조건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법에 의해서 그 교회가 교회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이 있어야 하는 거죠. 몇 년 전에 우리 교회에 어떤 목사님이 찾아왔는데, 자기가 교회를 개척했는데 우리 노회에 정식으로 가입하겠다는 거예요. 노회에 가입하면 그 교회는 이제 정식으로 교회가 되는 것이에요. 이건 교회법에 따른 것입니다. 성경에 따른 것도 아니고 교회법에 의한 것이지요. 그래서 이 분이 노회에 가입하려고 하니까 조건이 있어요. 목사님이 계시고, 그리고 교인들이 있어야 되는데 '세례교인 숫자 몇 명 이상' 이게 법으로 정해져 있는 거예요. 교회법에 의해서 세례교인이 25명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25명이냐? 장로님을 세울 수 있는 숫자는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가 '대한예수교장로회'이기 때문에 장로님을 세울 수 있어야 되요. 교회는 목사님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교회법에 의하면 목사님과 더불어서 장로님이 있어야 되요. 장로님이 있으려면 세례교인이 25명 이상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장로 한 명을 세우기 위해서는 세례교인 25명이 필요하거든요. 두 명을 세우려면 50명이 필요하고 세 명을 세우려면 75명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세례교인이 있어야 됩니다. 그 조건은 다 맞췄어요. 그런데 교회당 위치가 정해져야 되는데, 그 위치는 우리 교단의 다른 교회로부터 500m 이상 떨어져야 합니다. 이게 교회법에 있는 거예요. 500m 이상 떨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자기가 교회 건물 위치를 정할 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리 교단 교회로부터 '이 교회가 그 곳에 세워져도 우리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오지 않습니다.'라고 하는 확인서를 받아야 되요. 그 확인서를 거기다 첨부를 해서 노회에 제출하면 노회가 심사해서 '이제 이 교회는 우리 노회소속으로 받아드립니다.' 이렇게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노회에서 날을 정하여 그 교회설립예배를 정식으로 드리게 되는 것이지요. 개척은 이미 훨씬 전에 시작했어요. 그러나 교회법에 의해서 한 교회로 인정을 받고, 정식으로 노회에 가입을 해서 활동하려면 그와 같은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목사님이 개척한 교회에서 가장 가까운 교회가 우리 시찰에 있는 어떤 교회였어요. 그랬는데 거리가 직선거리로는 500m 가 좀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 가서 목사님에게 사정을 했어요. "목사님, 저희가 세를 얻다 보니까 부득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데 나중에 사정이 되면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갈 테니 500m 는 넘지 않았지만 허락은 해 주십시오." 이렇게 부탁을 한 겁니다. 그런데 이게 목사님 혼자서 된다, 안 된다 말할 수 없잖아요? 그런 경우에는 당회를 거쳐 결정을 내려야 되요. "이 교회가 이렇게 500m 가 안 되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저런 과정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한 교회가 세워지는 데에는 교회법에 의한 여러 가지 과정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워진 이후에도 교회법에 의해서 진행이 되어야 되요. 교회는 반드시 장로님이 계셔야 되지요. 그러니까 목사님이 개척은 하고 성도들은 좀 늘었는데 장로님을 안 세우면 장로님을 세우기까지 자격에 제한을 두는 거예요. 노회 안에서 그 권한들이 제한이 되고, 개척은 했지만 그 교회에 담임목사는 안 되는 거예요. 담임목사라고 하는 것은 위임목사를 말하는 것인데 장로님이 없는 교회에는 담임목사, 즉 위임목사가 세워질 수가 없어요. 본인이 개척했지만 위임목사는 아니에요. 자격에 제한을 두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건 교회법에 따른 거예요. 또 교회에는 목사님이 하나님 품으로 가셨다든지, 아니면 은퇴했다든지, 아니면 사임을 해서 비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 장로님들만 계시지요. 장로님들만 계시면 장로님들의 자격에 제한이 가게 되어 있어요. 장로님들의 자격의 첫째 제한은 뭐냐면 당회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없으면 당회가 모일 수가 없어요. 그래서 반드시 '목사님을 보내주십시오.' 이렇게 노회에 청원을 해야 되고, 그래서 노회에서 임시당회장을 보내게 됩니다. 임시당회장이 와서 당회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에요. 목사님이 안 계시면 당회 모임이 이루어질 수가 없어요. 헌법에 보게 되면 노회에 청원하고 노회가 임시당회장을 보내는 그 기간 동안, 하루가 되었든지 며칠이 되었든지, 그 기간 동안 교회에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면 장로님들이 모여서 의논할 수 있게는 되어 있습니다만 목사님 없이 당회를 언제나 모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 아니 세계만국교회 장로회 원칙은 목사와 장로가 함께 회의를 하며 교회 사무를 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장로 없이 목사가 교회 사무를 봐도 안 되고, 또 목사 없이 장로님들이 교회의 사무를 보아도 안 되게 되어 있어요. 원칙상 안 되게 되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일들은 현실적으로 해 나가는 일들이 있지요. 그런 경우들은 실상은 법에 따른 것은 아니에요. 장기간 걸쳐서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저 임시변통으로 한 번 두 번 혹 있을 수는 있겠으나 교회는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하면 안 되게 되어 있어요. 목사님을 안 모신 채 장로님들이 언제까지나 갈 수도 없고요, 목사님을 모셔도 위임목사가 아니라 임시목사로, 언제든지 1년 만에 내보낼 수 있는 이런 목사님으로 해도 안 되는 거예요. 그것은 두 번 이상 못 하게 되어 있어요. 다 이건 법에 따른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법에 따라서 교회가 세워졌다 할지라도 그 교회는 항상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회를 추구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회는 우리가 이미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대로 '교회의 지표'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교회예요. 즉 교회하면 언제든지 떠올리는, 당연히 그것은 교회라고 인정할 수 있는 그것을 추구해야 된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말씀의 참된 선포', '성례의 정당한 집행', '권징의 신실한 시행'이라고 하는 교회의 징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걸 보면 교회라고 하는 사실을 아는 거죠. 교회법에 의하여 교회는 설립되었으나 그 교회에 말씀의 참된 선포가 없다면 명목과 실제가 일치하지 않는 거예요. 즉 그 교회가 교회법에 의하여 설립은 되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는 일이 없다고 하면 그 곳은 교회라고 하는 외양은 갖췄지만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참 교회의 모습은 갖고 있지 못한 거죠. 그러니까 법에 의해서 교회가 세워질 수 있지만 그 교회는 항상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이에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교회의 외적인 표지는 세 가지예요. '말씀의 참된 선포'와 '성례의 정당한 집행'과 '권징의 신실한 시행'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 세 가지는 실상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교회는 이런 외적인 모습들과 더불어서 내적으로 교회가 교회인 증거가 있어야 되요. 그게 뭐냐 그러면 '성령의 교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내적인 징표예요. 외적인 징표와 내적인 징표가 합쳐져야 우리는 비로소 교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예요. 사람을 볼 때에도 보면 우리는 척 보면 사람인 줄 알지요. 척 보면 압니다. 그런데 아무리 외양은 사람이라도 내적으로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경우가 있지요. 그래서 내적으로 사람이라고 인정할 만한 것이 들어가 있지 않을 때에는 우리가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인두겁을 썼다..." 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이게 뭐예요? 겉으로만 사람이라 그 얘기예요. 속으로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저렇게 할 수 있느냐?"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뭐예요? 사람이란 겉모양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 사람이어야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거지요. 그 부분이 없다면 우리는 겉으로는 사람이지만 진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야, 사람도 아니야!" 그렇게 얘기합니다. 아니 겉모양이 사람인데 왜 사람이 아니라고 이야기할까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 속에 사람인 무엇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교회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참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그 속에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성령의 교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교통'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말씀을 가지고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의미하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 성령께서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우리 속에 들어와서 거주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내주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게 하셨어요. 그리고 그 공동체 내에서는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 교통을 이루게 하셨어요. 이것이 바로 '성령의 교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와 같이 외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과 내적으로는 성령의 역사가 있어서 성령의 교통하심이 이루어지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내적인 역사가 없다면 그곳은 외적으로는 모양을 갖추었지만 사람이 아니라고 말을 하는 것처럼 교회가 아니라고 말을 해야 되는 거예요. 전에 우리 아버지 발이 문드러지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죠. 여러 해 동안 고민했습니다. 병원에 가도 답도 안 나오고 약국에 가서 연고 사다가 바르고 소독도 하고 별 것 다 했어요. 과산화수소수 갖다가 소독하면 거품이 허옇게 일어납니다. 그러면 약국에서 산 탈지면으로 그 거품을 다 걷어내고 연고, 새 살 돋게 하는 연고 같은 것 바르고 그리고는 거즈로 싸고 하지만 소용이 없어요. 계속해서 살이 문드러지는 거예요. 진물나면서 점점 살이 없어져가요. 그러면서 발 모양이 점점 이상하게 변해 가는 거죠. 그래서 여러 해 동안 고민도 많이 하고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어느 날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이거 한 번 '혈관조형술'을 해 봅시다..." 그러는 겁니다. 약을 먹고 좀 시간 지난 다음에 엑스레이를 찍으면 약 성분이 핏속에 섞여 그 피가 지나가는 핏줄이 그대로 찍혀 나오게 하는 그런 시술이었어요. 그래서 발을 찍어보니까 허벅지에 있는 굵은 핏줄의 일정 부분이 안 보이는 거예요. 그 얘기는 핏줄이 없다는 얘기지요. 그 밑으로 핏줄이 없는데 다행히 실핏줄들이 있어가지고 아래 나머지 핏줄과 연결되어서 그나마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실핏줄은 어차피 실핏줄이니까 종래에는 피가 충분히 공급이 안 되는 거지요. 그래서 말단 부분부터 해서 피가 공급이 안 되기 때문에 점점 살들이 없어져 가고 문드러지고 있었던 거예요. 결국은 핏줄을 이어붙이는 수술을 했어요. 정맥의 일정 부분을 잘라서 거기에다가 이어붙이는 수술을 해서 혈관을 다시 만들었다는 이야기지요. 그래야 피가 제대로 통하거든요. 그랬더니 진물 나는 게 그치는 거예요. 세상에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이 고생했는지 몰라요. 날마다 하는 일은 약국 순례, 병원 순례예요. 우리 어르신들도 보게 되면 '이 병원 가면 나으려나, 저 병원 가면 나으려나?' 이래 가지고 날마다 오늘은 여기 병원 그리고 약국은 저기, 내일은 저기 병원 약국은 여기... 이렇게 사방에 다니는 거지요. 그래서 날마다 일이 병원가고 약국 가는 거예요. 온 동네 약국에 소문이 나 있는 거지요. 한 번은 제가 약국에 쌍화탕 사러 갔더니 저를 알아봐요. 알고 봤더니 우리 아버지께서 약국순례를 하시니까 아는 거예요. "아! 어느 교회 목사님이시죠?" 가서 앉아서 이야기하다보면 "우리 아들이 어느 교회 목사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동네에서 목사라고 표 내고 다니지도 않는데 다 아니 어떡합니까? 조심해야죠. 세상에 말 한 마디 하는 것, 옷 하나 입는 것, 길거리 가다가 뭐 하나 사 먹는 것, 이거 눈치 보여서 이제부터는 누가 알아볼지 모르니까 조심해야 되겠다... 여러분, 몸에 생명이 흐르는 핏줄이 있어요. 이 핏줄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때부터 몸은 점점 이상하게 되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우리 몸에는 생명이 흐르고 있는데 생명이 흐르지 못하는 곳에서는 점점 죽음의 증거들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핏줄을 통해서 생명이 건강하게 흘러야 되요. 건강하게 흐르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는 거지요. 이곳에 콜레스테롤이 들어가서 흐르고 있으면 몸에 이상이 생길 수 있잖아요? 피 검사를 해 보게 되면 온갖 것들이 나오잖아요? "당뇨 수치가 너무 높습니다. 몸에 이상이 있습니다." 이거죠. 생명이 흐르되 건강하게 흘러야 되요. 하나님의 교회가 외적인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교회가 건강하고 아름답기 위해서는 내적으로 건강한 생명이 흘러야 됩니다. 이 건강한 생명이 무엇이냐면 성령의 교통하심이에요. 그런데 분열된 곳, 분쟁하는 곳에는 건강한 생명이 흐를 수 없습니다. 가다가 끊기는 거예요. 여기는 바울 파요, 여기는 아볼로 파요... 피가 흐르다가 여기서 그쳐요. 혈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피가 흐르지 않기 때문에 분명히 죽음의 증세가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이지요. 살 어느 부분인가 문드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피가 제대로 흐르지 않습니다. 생명이 제대로 흐르지 않습니다. 교회가 분열한다는 것, 교회가 분쟁하고 있다는 것, 이것은 교회의 생명 자체를 끊어버리는 일인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지요. 그리고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은 그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피가 흐르지 않아서 이 발이 문드러지고 그래서 한번은 발등이 새카맣게 변했어요. 발등이 새카맣게 변했는데 겨우 며칠 사이에 그렇게 된 거예요. 말씀도 안 하시고 있다가 어느 날 양말을 쑥 벗는데 이게 시커먼 거예요. 그래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병원에서도 제대로 모른다고 하는 거예요. 치료도 제대로 안 해줘요. 할 수 없이 모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뭐예요? 그냥 고약 가져다가 붙이는 거잖아요. 옛날에 '이명래 고약'이 유명했는데, 이 고약은 요만큼 한 덩어리 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또뽑기'처럼 이만큼 큰 고약들이 나오고 있었어요. 그래서 약국 하시는 어떤 집사님께서 그런 고약 있으니까 한 번 발라보라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고약을 가져다가 두 장을 붙이니까 발등을 다 덮어요. 그걸 붙이고서는 붕대를 감아놨더니 나중에 소독하려고 보니까 검은 살들이 흐물흐물 녹아버렸어요. 그리고는 허연 줄들이 이렇게 죽죽 가 있어요. 저는 해부학 전공 안 해서 뭐가 뭔지 몰라요. 보기도 징그러워서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어려웠어요. 어쨌든 소독약 바르고 그 위에 화상에 새살 돋게 한다는 연고로 도포하고 다시 붕대를 감아놨는데 그렇게 몇 개월을 하고 보니까 발모양이 뒤틀렸어요. 발바닥의 살이 이렇게 몰려가지고 튀어나왔는데, 그 다음부터는 걸어가는데, 마치 평발처럼 발바닥이 들어가지 않으니까 잘 걷지를 못하는 거예요. 걸을 때마다 이게 걸려서 걸음이 제대로 안 되고, 그 다음에 이게 계속해서 저려오는 거예요. 그래서 저리다고 늘 호소하고 걷는 것도 제대로 못하고... 그 다음부터는 발가락들이 문드러지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가 영적 생명이 끊어지면 교회 안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성도들이 은혜를 받지 못하고 성령의 역사가 그치면서 영혼이 메마르고 영혼이 강퍅해지면서 세포 죽은 것들이 때로 밀려나오듯 죽은 영혼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무서운 겁니다. 그 흉한 모습, 그것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을까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교회의 모습 가지고 어떻게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교회가 하나 된다고 하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처럼 누구 파, 누구 파, 이렇게 나뉘어서는 결코 교회의 건강함, 교회의 아름다움, 교회의 능력을 나타낼 수 없고 우리 교회에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금년에 교회 창립 60주년을 맞아서 여러 가지 일들을 거행했습니다. 저는 사실 몇 년 전부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60주년을 맞이하는데, 60주년을 우리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아무 행사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것은 안 될까?' 고민을 했어요. '60주년 없이 그냥 넘어가면 안 될까?' 그런데 사람들 생각은 또 그렇게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고민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안정이 되고 또 성도들의 마음이 새롭게 모이면서 60주년을 잘 진행할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하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해도 문제는 또 있어요. 60주년을 하려면 그래도 뭔가 단장도 좀 하고 정비도 좀 하고 이렇게 해야 될 텐데, 그러려면 재정적으로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어떤 생활인지 뻔히 알잖아요? 그런 상황 속에서 이것을 진행할 수 있는 재정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냐? '한 번 헌금을 하긴 해야 될 텐데 헌금이 제대로 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아무에게도 말씀드리지 못한 채 혼자 속으로만 앓는 것입니다. 주님, 이게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은혜롭게 다 감당하고 오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거예요. 주님께서 우리 서대신교회 사랑하시고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 길을 열어주시고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마음도 하나 둘 정리하시고, 또 헌금을 해 보니까 우리가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성도들이 헌신을 하고, 그래서 금년에 우리가 하고 싶었던 것들 다 정비하고 그렇게 예배를 드리게 된 거예요. 감사예배도 드렸고, 홈커밍데이도 했고, 찬양발표회도 했고, 임직식도 했고, 또 지난 주간에는 부흥사경회 통해서 얼마나 많이 은혜를 받았는지... 성도들 가운데는 '또 김 목사님이냐? 또 김남준 목사님이냐?' 이런 생각 하신 분들도 있었고, "그전에 김 목사님 오셨어도 그렇게 크게 역사하는 것이 없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의 그와 같은 모든 생각들을 넘어서서, 우리가 예측하는 모든 것들을 넘어서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역사하셨던 거예요. 저는 주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에게 분명히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 교회를 새롭게 하신다고 믿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역사적으로는 여러 가지 상처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한 200여명 모이는 교회로, 6.25 직후에 우리 교회는 지금같이 이만큼 모이는 교회였어요. 교회당은 지금보다 훨씬 작았죠. 그러나 이만큼 성도들이 모이니까 예배당이 가득 차고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이 교회에 시험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분쟁하고 다투고 하는 동안에 성도들이 떨어져 나가고, 교회가 분립되어 나가기도 하고, 그러는 중에 교회는 점점 오므라들었어요. 마치 문드러져서 살들이 녹아내리는 발처럼 우리 교회가 그렇게 된 겁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 다시 또 주님께서 기회를 주셨습니다. 양훈석 목사님 오시고 23년 동안 목회를 하셨습니다. 물론 그 분이 어떤 여러 가지 일로 참 안타깝게도 여기에서 은퇴를 하지 못하시고 중간에 사임하시게 되셨습니다만, 그러나 이 교회가 또 한 동안 부흥을 해서, 말씀을 들어보니까 60년대 중반에 한 200여명 가까이 모이는 그런 교회로까지 컸다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이 교회가 다시 시험에 들면서 다시 쪼그라들었어요. 이래가지고 제가 전임 목사님이신 김정태 목사님한테 말씀을 들으니까, 당신이 우리 교회를 담임하러 왔을 때에는 100명도 안 되는 성도들이었더라 하는 거죠. 예배시간에 한 60명 될까 이런 정도 성도들이 모이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전에 200명 이상 모이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시험 들면서 교회가 다시 줄어들고, 그래서 김정태 목사님이 부임했을 때에는 한 60명 정도밖에는 안 모이는 교회였다는 거지요. 그 교회 붙들고 씨름하면서 다시 교회가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당도 새로 지을 수 있게 되었던 거예요. 그리고 이제 또 다시 목사님이 바뀌고 그 동안 우리가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현실적으로 지금까지 몇 년 동안에 걸쳐서 우리가 경험했던 일들입니다. 많이 어려웠죠. 저도 많이 어려웠지만 성도 여러분들도 많이 어려웠습니다. 교회에 대해서 회의를 가지고 교회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한 채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속에서 이런 말도 저런 말도, 또 이런 불평과 저런 아픔도 다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다 청산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저는 생각하면 너무나 감사해요. 부족하지만 주님께서 이곳에 보내서 제가 주님께 훈련받은 것들로 섬길 수 있게 하셨고, 그런 과정에 많은 어려움들은 서로 겪었지만 주님께서는 그런 모든 것들을 다 정리하시면서 이제 마음을 합하고 뜻을 합하고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면 이 교회를 축복하시겠다고 하는 증거들을 보여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이제 60주년 모든 행사들을 은혜 가운데 마쳤는데 우리 앞에 놓여있는 이 새로운 목표, 그저 6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 아닌,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세우시고 영광 받으시기로 하셨던 그 목표를 위해서 함께 달려가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 혼자 하는 일이 아니죠. 목사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장로님들만 하는 일도 아닙니다. 여러 성도들, 장로님들, 목사와 더불어서 하나가 되어야만 감당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가 되지 않으면 성취할 수 없어요. 하나가 되지 않으면 이룰 수 없습니다. 그렇게 영광스럽고 그렇게 아름답고 그렇게 능력 있는 교회는 하나 됨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겁니다. 하나 됨이 없다면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교회가 당하는 시험이란 게 뭡니까? 분열하는 것이고 다투는 것이고 분리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을 넘어서야만 교회는 성장하게 되어 있고 이것을 넘어서야만 교회는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3절 말씀을 보게 되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그랬습니다. "힘써 지키라." 힘써 지키는 일, 이것은 쉽게 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거예요. 우리가 지난 사경회 동안 배운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교회의 하나 됨은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2절 말씀을 보면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한 실천 방법이 나오는데 이렇게 되어 있어요.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그랬어요. '겸손', 자기 부인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온유', 자기 부인 없이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다. '오래 참음', 자기 부인이 있어야 되죠. '용납하는 것', 자기 부인이 있어야 됩니다. '사랑하는 것', 이것도 자기 부인이 있어야 되요. 사랑하는 게 얼마나 힘듭니까? 자식을 키워 본 부모들은 다 알아요. 나는 자식을 한없이 사랑하는데 자식은 부모의 말을 얼마나 안 듣는지 사랑하는 게 힘들어요. "아이구, 저거 내 배로 낳았지만 정말 왜 저러냐?" 사랑하기가 정말 힘들어요.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참된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의 하나 됨은 이렇게 자기 부인을 통해서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을 힘써 행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영광스럽고 능력 있는, 아름다운 서대신교회를 바라보면서 자기를 부인하되, 힘써 부인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복된 교회를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 교회를 통해서 여러분의 영혼과 삶에 한량없는 은혜를 더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익 힘 문 제
1. 지난주에 배운 말씀을 삶 가운데 어떻게 묵상(적용)하며 살았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2. 교회가 되기 위한 조건들 가운데 교회법에 의한 조건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3. 교회가 되기 위한 성경의 원칙 가운데 교회되는 외적 증거와 내적 증거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4. 성령의 교통이란 무엇입니까?
5. 성령의 내적 역사와 교회의 하나 됨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6. 교회가 하나 된다고 하는 것은 왜 중요합니까? 그리고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7. 말씀을 듣고 깨닫고 은혜 받은 내용을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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