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이혼법
오늘날 한국 사회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이혼율을 나타내고 있다. OECD 국가들 중에서도 9위이고, 아시아에서는 국가들 중에서는 최고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문제는 교회에서도 이혼을 한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혼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 특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연구하는 것은 교회가 이혼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지침을 얻기 위해 필요하다. 결혼에 대한 신약의 교훈은 예수님의 말씀과 바울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다. 바울 역시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이기에 결국 이혼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중요한 논점이다. 이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루는 중요한 본문은 마태복음 5:32; 19:3-9, 마가복음 10:1-12, 누가복음 16:18; 고린도전서 7:10-15이다. 이러한 본문들을 중심으로 신약의 이혼관을 연구하고, 현대교회에 적용해 보고자 한다.
이혼과 관련된 본문들
마태복음 5:32과 누가복음 16:18
두 구절은 내용이 유사하다. 둘 다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 부분은 자신의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남자는 간음하는 것이고(누가복음), 그의 아내로 간음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마태복음), 뒷부분은 구구든지 이혼당한 여자와 결혼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차이는 마태복음에 “음행한 연고 없이”라는 설명이 더 붙어 있다는 것이다. 마가, 누가, 바울은 이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은 마태가 이 첨가를 통해 예수님 자신의 이혼진술에서 “율법”을 폐하려 했던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마태복음 19:3-9과 마가복음 10:1-12
이 두 구절 역시 닮았는데, 둘 모두 예수님의 생애의 이야기에서 같은 곳에 위치한다. 내용과 어휘도 비슷하다. 마태와 마가 둘 다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남자는 간음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차이는 마태는 여전히 “음행한 연고 외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고, 마가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고 덧붙이고 있다.
고린도전서 7:10-15
바울은 7:10에서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라는 말로 이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소개한다. 바울은 이것이 예수님의 명령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아내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아야 하며,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한다. 둘 다 이혼과 관련된 표현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표현하고 있다. 10-11의 말씀은 아내가 남편과 이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어느 정도 암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마가복음과 닮았다. 그러나 바울은 재혼이 배제된 별거의 가능성으로 결혼의 이상을 완화한다. 바울은 이혼을 찬성하는 일을 주님 자신의 권위로 단호하게 거절하는데, 이혼이 된 경우 여자는 다시 결혼해서는 안되며, 남편도 그의 아내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12-15에서 바울은 믿지 않는 배우자가 믿는 배우자를 떠나는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이는 사도적 명령을 예수님의 말씀에 추가하고 있다. 바울은 믿지 않는 배우자가 동의하면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있지만, 믿지 않는 배우자가 나뉘길 원하면, 이혼을 원하면,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있다. 믿는 자는 “구속 받지” 않는다. 바울은 결혼생활의 지속이라는 이상에 믿지 않는 배우자가 이혼을 선택할 경우 믿는 자는 실제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을 덧붙인다.
“형제나 자매가 이런 일에 구애 될 것이 없느니라”(고린도전서 7:15). 이 구절은 모호하기 때문에 “불신자와 계속 살 필요가 없느니라” 또는 “결혼 관계에 구속받을 것이 없느니라”는 뜻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렇다면 마음대로 다시 결혼해도 괜찮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지만 바울이 이혼을 분명하게 거절한다는 앞 구절의 사실을 볼 때 불신자와 계속 살 필요가 없다고 해석 하는 점이 나을 것 같다. 남자가 죽으면, 아내는 배우자가 믿는 자일 경우 다시 결혼해도 무관하다.(고린도전서 7:39) 바울은 아내가 죽을 경우 남편이 다시 결혼해도 괜찮은지에 대해서는 말씀하고 있지 않지만, 아내의 경우를 보았을 때 남편의 경우도 허용된다고 본다.
유대교적 배경
유대교 사회 속에서 이혼은 가능하였다. 필로도 요세푸스도 그 어떤 랍비도 이혼을 금하지는 않는다. 쿰란 문헌도 이혼을 완전히 금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구약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었다. 신명기 24:1-4은 이혼이 가능한 현실을 토대로 주어진 법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결혼관은 유대 남자들은 자녀를 많이 낳아서 종족 계승에 기여할 의무가 있으므로 결혼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결혼의 신성함에 대한 여러 견해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혼에 대해서는 샴마이 학파와 힐렐 학파가 입장을 달리하고 있는데, 샴마이 학파는 힐렐 학파보다 이 부분에 대해 더 엄격했다. 샴마이 학파는 신명기 24:1에서 이혼의 조건으로 제시된 합당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해석을 “행실이 나쁨, 신실하지 못함, 성적인 부정으로 보는 반면, 힐렐은 단지 요리를 망치는 것(남편의 저녁 식사를 태움)도 이에 해당한다고 해석한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결혼에 대해서 남자보다 여자가 더 열등한 위치에서 보고 있고,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한 유대인들의 결혼관과 연관되어서 생각되어져야 한다.
특별히 이 두 파는 이혼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모세의 율법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 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내어 보낼 것이요”(신24:1-2)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샴마이 학파는 이혼 조건을 오직 ‘간음죄를 범한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교적 율법을 자유롭게 적용했던 힐렐 학파의 경우 간음 외에도 남편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모든 일들을 이혼 조건에 포함시켰다. 이로 인해 당시 유대 남자들은 마음대로 아내를 버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바리새인들의 교활한 질문은 예수님께서 긍정하든 혹은 부정하든 어느 한 파와 충돌하도록 하는 공격적인 질문이었다.
또한 그들은 이 질문을 통해 예수님을 헤롯의 적으로 만들려고 했을 지도 모른다. 당시 주님이 계시던 베뢰아는 헤롯 안디바가 다스리던 곳이었다. 헤롯 안디바는 본처와 이혼하고 자기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와 재혼했다. 세례요한은 헤롯이 부당한 이혼을 했다고 지적하고 체포되어, 헤로디아의 음모에 목이 잘려 죽었다. 이혼의 문제는 헤롯 안디바의 신경을 거스르는 문제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문제를 섣불리 발언하여 이혼에 대한 반대의견을 개진할 경우 헤롯 안디바의 귀에 까지 들어갈 수 있는 문제였던 것이다. 헤롯 안디바는 예수님이 자기가 죽인 세례 요한이 부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감시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혼에 대한 질문은 주님을 헤롯의 적으로 만들기에 적절한 질문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답변에서 율법과 배치되는 점을 찾아내어 예수님을 공격할 증거를 삼을 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과 동일한 운명에 빠뜨리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볼 수도 있다.
예수님은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에 앞서 질문을 던진 바리새인들에게 최종 권위가 되는 모세의 율법을 통해 그들의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게 하셨다. “모세가 너희에게 어떻게 명령하였느냐?”(3절) 구약 성경에서 때로는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지만, 본질적인 명령자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모세가 허락한 것 보다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순종해야 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명령(결혼의 법칙)이 무엇인지 묻지 않고, 모세의 허락이 무엇인지 물으신 것은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악한 의도로 왜곡하고 그 본질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폭로하기 위한 의도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토론의 주제를 ‘허락된 것’(3-4절)에서 ‘명령하신 것’ (6-7절)으로, ‘이혼’에서 ‘결혼’으로 전환하신다.
마가복음 10:1-12 구조 분석
1-9절 예수와 무리들의 문답
1-4절 사람들의 질문 A
5-9절 예수의 대답 B
10-12절 예수와 제자들의 문답
10절 제자들의 질문 A′
11-12절 예수의 답변 B′
마가복음 10:1-9은 예수님과 무리들의 대화이고, 10:10-12절은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대화이다. 대화는 사람들과 제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으로 진행되고 있다. 11절과 12절은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궁극적인 답변이다. 예수님은 오직 제자들에게만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은밀하게 대답해 주신다. 본문의 위치 또한 마가의 의도를 보여주는데, 10:13-16에서 예수님은 사회적 지위가 전혀 없는 어린 아이들을 영접하며 받아들이는 본을 보여주셨고, 어린 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또한 9:33-50은 제자들의 권력다툼 사건으로 예수님은 어리 아이와 같은 자, 즉 권력이 없는 사람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라고 가르친다. 본문 앞뒤의 구절은 집단 내에서 권력을 추구하며 권력이 없는 자를 무시하고 집단 밖의 사람들을 멸시하는 제자들에게 아무 사회적 지위가 없는 자들이나 집단 밖의 작은 사람들을 존중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여자를 내어보내는, 즉 이혼시키는 것을 허용하는 당시 사회적 관습을 부정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본문은 담고 있는 것이다. 여인들은 당시 낮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다른 여인과 결혼하고자 아내를 내어보내는 것을 금지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시는 맥락에서 앞 뒤 사건들의 강조점과 일치하고 있다.
단어연구
이혼시키다(apoluow)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에 비해서 ‘아포류오’를 넓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음행’을 예외 조항으로 두었다고 볼 수 있다. 마태복음에서 요셉이 정혼한 마리아를 데려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그녀를 이혼시키는 것’으로 표현한 것은 이러한 넓은 의미의 용례를 보여준다. 정혼자가 음행의 경우 요셉의 경우처럼 파혼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나누다(korijow)
고린도전서 7:10에서 바울은 예수님의 명령을 인용하며 아내는 남편에게서 나누이지 말라고 권한다. 이것은 이혼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볼 수 있지만 아내에게 이혼을 할 권한이 없는 당시 배경으로 볼 때, 이혼 증서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남편을 떠나지 말라는 명령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마가복음 10:9의 “하나님이 합하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않게 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이혼만을 금하신 것이 아니라, 기도하기 위하여 서로 합의하여 일정기간 동안 별거하는 것이 아니라 합의함 없이 또는 일방적으로 장기간 별거하는 것도 금한 것으로 해석하여 적용한 것이다.
간음(moicheia)
구약성경에서 간음이란 다른 남자의 아내와 행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레20:10, 렘36:23, 겔31:32) 간음죄는 사형과 관련되어 있다. 간음이 나쁜 신학적 이유는 배우자와 이웃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일 뿐 아니라 하나님과 언약관계의 파괴이기 때문이다.
신약과 70인역의 용례에서 음행(pomeia)은 여러 가지 불법적인 성적 행위를 가리킬 수 있다. 근친상간, 간음, 매춘, 일반적인 성적 부도덕, 그리고 심지어 우상숭배에 대한 은유를 가리킬 수 있다. 간음을 가리키는 헬라어 moicheia가 따로 있는데, 마가복음과 마태복음, 고린도전서와 히브리서의 pomeia가 moicheia와 구별되기 때문에, pomeia가 간음과 동일시 될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두 단어가 구별되기는 하지만, 그 구별은 같은 특성에 대한 것으로 전자는 구체적인 용어이며 간음을 뜻한다. 후자인 pomeia는 훨씬 더 포괄적인 용어로 모든 불법적인 성적 행위를 의미한다. pomeia가 moicheia를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태의 청중들은 이 단어를 “성적 부도덕”이라는 넓은 의미로 해석하고, 간음, 근친상간, 혼전 부정 뿐 아니라 동성애, 수간, 그리고 구약에 정죄된 모든 성행위를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이혼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은 신명기 24장의 기록된 규정에 근거하여 이혼이 허락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유대 사회에서 이혼을 합법화 하기 위한 근거로 이용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세의 허락이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셨다. 예수님은 모세가 이혼을 허락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으시다. 모세가 그것을 허락한 이유는 유대인들의 완악한 마음 때문이었다. 완악한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순종치도 못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혼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남편들의 강퍅한 마음과 행동들로 인해 유린당하는 아내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소극적으로 허락하고 있는 것이다. 즉 모세는 한 남자가 충동적으로 아내와 이혼하거나 아내를 한 인격제로 대하지 않고 학대하는 것에 제재를 가함으로써 아내를 보호하려 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모세의 이 법령은 이혼을 찬성하거나 조장하기 위해서가 아닌 오히려 이혼을 억제시키며, 아내들이 남편의 희생물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모세의 근본 의도는 하나님의 결혼 목적이 철저히 무시된 사회 속에서 어떤 한 종류의 질서를 세워 보려는데 있었던 것이다.
결국 예수님은 이혼을 금지하시는 것보다 더 높은 단계, 즉 결혼의 신성함을 강조하시면서, 그들의 사고가 하나님의 뜻과는 너무나 다르고,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하나님의 법도를 떠났음을 꼬집고 계신 것이다.
이혼을 당연시 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님의 이혼법을 적용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 말씀의 배경이 그리스-로마 배경의 유대이므로, 남녀가 평등하지 않은 시대였다. 그러나 현대는 남녀의 권리가 동등하며, 남녀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이 말씀을 적용함에 있어 남녀구분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적용하기 쉬운 것부터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이혼 당한 사람과 결혼하지 않는다. (마5:32, 눅16:18)
2. 배우자가 음행을 하지 않는 한 이혼시키지 않는다. (마19:9)
3. 배우자를 이혼시킨 사람은 독신으로 지낸다. (막10:11-12)
4. 이혼을 당한 사람은 독신으로 지내거나 다시 결합한다. (고전7:11)
5. 이혼하지 않는다. (막10:9, 고전7:11)
교회에서 2번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과 4는 억울하게 이혼 당한 사람에게 가혹하게 여겨질 것이다. 3 역시 음행을 한 사유로 배우자를 이혼시킨 사람의 경우 불합리하게 여겨질 것이다. 5는 목표로 제시될 수는 있지만 문자 그대로 모든 상황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1과 4의 가혹성 문제는 2, 3을 적용할 경우에 자연히 해결되는 문제이다. 억울하게 이혼을 당하는 사람이 없어질 것이며 이러한 법체계 속에서 이혼을 당한 사람은 음행을 한 자일 것이므로 재혼의 가능성을 없애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려는 음행의 이유 없이 억울하게 이혼을 당한 사람의 경우에는 재혼이 허용될 가능성을 암시한다. 또한 상대방이 간음을 할 경우 이혼과 재혼은 허락된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예외 사항은 불신자가 이혼을 요구할 때 이혼 당해 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의 예) 바울의 경우 4를 실행 할 수 있는데, 불신자와의 이혼이 허락되는 것은 불신자와 신자 사이의 결혼은 진정한 한 육체 됨을 이루지 못한 것이기에 이혼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이혼한 경우 신자와 재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두 가지 경우를 빼고는 이혼이 정당화 될 방법이 성경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도 이혼이 불가피하게 발생할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는 그 이유가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혼 사유든지 그것은 정상 참작의 조건이 될 뿐 성경에 의하여 정당화의 조건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혼을 금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모세 율법보다 더 철저한 것이므로 모세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닌 약자를 보호하는 구약의 정신을 잘 구현한 것이다. 이혼을 당하는 사람들이나 이혼된 가정의 자녀들은 우리가 긍휼히 여겨야 할 대상이지 정죄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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