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독정보/성경자료

구약 특수 정경론_ 오경비평사_역사문헌비평과 전승사 비평

by reviewer_life 2014. 3. 4.
반응형

구약 특수 정경론

서론

성경의 자증, 구약 비평은 신약보다 심각(정도의 문제)

1) 역사의 길이와 관련된 문제- 천지창조~에스라느헤미야(5c)

2) 신약시대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가 있기 때문에

오경비평은 거룩한 역사와 계시역사에 치명적인 것임-구약정경의 축이기 때문

 

2.1. 오경비평사

2.1.1 Jean Astruc 이전

 

1) 유대인&신생기독교회-모세저작믿음

영지주의-모세의 책 거부(허구)

혹자-교의학적 윤리적 이유로 반대

중세-유대인 Jizchaki(Isaac of Toledo) 에돔왕

창 36:31-여호사밧시대

이븐에즈라-모세저작권인정, 후대첨가도..

 

2) 종교개혁시대(인문주의-언어학&본문연구)

-라틴어번역(Vulgata)가 아닌 원문에 근거

a. Andreas Bodenitein 모세연설에 다른 문체가 만연, 후대 저작의 역사적 부분의 문체와 일치(모세 저자 아님)

b. Andreas Masius(d. 1573) 여호수아 주석, 후대의 모자이크와, 상호모순점 지적. 에스라를 주요저자로 주목(모세저작인정&후대첨가)

 

3) 계몽주의 시대

a. Thomas Hobbes의 Leviathan(1651) 신 11-27은 모세저작, 모세에 대해서 기록됨을 주장, 구약전체는 포로 귀환 이후와 톨레미 2 이전에 형성

b. Isaac de la Peyrere 시대착오현상, 반복순서상의 결어, 역사적 모순(모세가 출애굽 광야 여행과 율법수여에 대한 일종의 일기책을 썼는데 거기에 과거의 역사를 덧붙임), 다양한 원전사용, 아담은 인류 시조 아닌 이스라엘의 조상

c. Spinoza 이븐에즈라가 언급한것 지적, 모세에 대해 3인칭으로 말한것, 단지파에 대한 모순, 만나에 대한 보도도 다름, (저자-에스라)

d. Richard Simon 구약역사비평에서 구전이라는 말 처음으로 시작, 모세를 부분적 오경저자로 봄. 공동작업 통해 오경 생성(전승과 편집개념이 도입됨)

 

e. Jean de Clerc(알미니안적 입장의 항변자) 722년 앗수르 왕이 파견한 이스라엘 제사장의 작품으로 파악, 그는 시몬의 공식문서 작성에 반하여 모세의 개인의 편집으로 봄.

(그러나 전승과정이라는 사실은 공통적)

 

2.1.2 Astruc에서 Wellhausen(1753~1865)

1) 1711년 Witter 창 1:1-2:4 병행 2:5~3:24 다른 하나님의 이름 사용(신명의 차이)

2) Astruc 보수적 입장(모세저작설 인정)신명의 차이는 모세가 두 개의 주된 문서를 가졌다는 것, 현대학자와의 차이점은 연대를 말하지 않고 문서에 대해 이야기한것. 두문서가 창세기 전체에 나타남 제시(초기형태의 원전가설)-창세기에만 국한

3) J.G. Eichhorn(구약총론 처음 쓴사람) Astruc의 이론 받음(모세저작설 나중에는 부인, 알려지지않은 편집자), 신화라는 말을 처음 도입, 현재형태 오경은 여호수아 사무엘 사이의 시대에 형성

4) Karl David Ilgen(Eichhorn 후계자) "문서원형속의 예루살렘 성전 기록 보관소의 기록문서" 1798, 세명의 저자에 의한 17개의 문서 지적- 후펠트가 받음(신문서설=수정문서설의 동기가 됨)

5) A. Geddes "단편설" (Vater가 옹호, 창세기에서 38편의 단편 구분) - 오경의 핵심을 신명기나 창세기 출애굽기로 봄, 이 책들은 다윗-솔로몬 시대로 봄 ↔ Ewald, Ranke(의도적인 구성과 관련성, 연대기적 배열을 간과했다고 함)

6) vater의 추종자 de Wette는 E의 원문서는 출 6장까지 계속됨, 가장 오래된 부분은 다윗시대 초기, 오경의 이야기는 원래 독립적인 글(단편설), 오경역사 부분과 율법 부분 신빙성 없음, 그 내용을 신화와 민담으로 파악하고 모세율법은 후기 시대로 파악, 역사적 근거 결여, 창세기 출 이스라엘 신정정치의 민족적 서사시 형성, 레위기는 후기 수집물, 민수기는 첨가가 많고 순서가 맞지 앟음. 신명기는 가장 늦은 책으로 요시아 시대에 발견된 율법책- 역사 비평을 문헌 비평과 연결시킴

7) H. Ewald(벨하우제의 스승)에 의해 단편설은 전복됨, 창세기를 전체적으로 독립된 작품으로 봄. 창세기의 통일성을 증명하고자 함. 보충설-(E가 원전, J는 보충), BLEEK, DELITZSCH가 옹호, 그는 E와 J가 출 6:2까지만 이어지는 것이 아닌 오경의 다른 책에도 나타난다고 주장, 1843,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단편설과 문서설의 결합으로 RUPPR ECHT는 이것을 결정가설이라 부름-오경의 핵심이 성장하여 다섯 차례까지 확산되어 새로운 형태로 결정되었음.

 

포로 직전의 신명기

8) Eduard Riehm- 신명기를 독자적인 원전으로 인정(D 문서 파생)

Hermann Hupfeld 1854 E1이 가장 오래된 기사(창조-땅분배), 독자적인 입장을 취하는 R(편집자)에 의해 합쳐짐- 신문서설(수정문서설) 첫째 E는 제사장적 경형 반영(P로 발전), 둘째 E는 J에 동의하는 특징.

 

** Hegel의 영향-종교는 유한정신과 무한정신의 사이의 관계, 역사를 통해 진행, 무한 정신은 자의식을 가지고 다른 단계를 따라 계속진행, 자연종교-개별적종교-절대종교

구약에서는 Vatke와 George가 헤겔의 사상을 가장 강하게 적용시킴

Bleek와 Kuenen의 총론- 퀴넨은 J의 독자성과 E1과 E2의 차이를 받아들임(Js 제사장 그룹에서 생성, 솔로몬 치하로 파악, D가 아니라 이 제사장 중 하나가 오경의 R(편집자). 결국 퀴넨에 의해 JEDP가 확정됨

---------------1865---------------

 

2.1.3 Graf-Kunene-Wellhausen의 전복

1) 1866 Graf 구약의 역사 비평연구-고등비평 시작됨. 그의 스승 Eduard Reuss 는 오경의 역사적 부분을 율법의 부분에서 따로 떼어 내서 여구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한다. 양자는 기록 편집되지 않은채 존재했을 수도 있다는 것, 역사적 부분의 기록은 율법부분보다 더 오래 되었다고 한다. 구약의 율법과 시편은 예언서 보다 더 늦다. 오경의 중요한 부분은 신명기 이후에 생겼다. 루스는 신명기가 이스라엘의 기록된 율법 중에 가장 오래된 부분이라고 주장하는데 De Wette를 능가한다. 오경의 율법책들의 나머지 부분은 621년 이후에 생긴 것으로 생각함.

 

3) 이후에 이어진 연구에서는 문학적인 것이아닌 역사적인 것이 특징이다. 문서의 순서와 연대. George, Vatke

 

4) 벨하우젠주의의 출현과 발전

a. 1861 Keil의 오경주석 출판

b. 1862 John Colenso '오경'-오경의 보도가 비역사적이라고 주장. 진정성이 있는 문서로 묘사하는 그 부분이 가장 비역사적이라고 함(가장파괴적 비평)

c. 1862 Julius Popper 성막과 제사장에 대한 묘사가 거기에 대한 규정보다 더 늦다고 함, 기본문서는 장시대에 걸친 개정과 전승의 과정로 파악, E1는 보충된 것이 아닌 보충자이고 오래되지 않았음.

d. 1865 Graf의 책이 나옴-신명기기자는 율법적, 역사적 작품의 편집자.

e. kuenen의 결론은 단지 제사적 율법수여 뿐 아니라 제사적인 역사자료도 후대의 것이라는 것.

g. Noldeke는 그라프의 개념 거절, J가 기본문서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받아들이지만 신명기는 확실X - G(기본문서)-J-편집자(R)/ 편집자는 1, 2언약의 신명기 기자이며, 그의 작품을 3언약과 관련시킴. anti-Graf적

그는 후펠트의 이론 개선함, J는 보충자가 아닌 독자적 문서주장. 그리고 R은 E-2와 J를 스스로 독자적으로 가지지 않고 그들의 결합된 상태로 있다고 주장.

 

5) 벨하우젠

'이스라엘 역사' - JE, D, P

후펠트 노선의 문헌구분을 따르며, Graf-Kuenen 노선에서 연대 설정, 문서와 생성시기에 관련하여 그 시대의 이상향을 투사하고 있다고 본다. 근본적으로 헤겔 역사 철학에 입각한 이스라엘 역사 재건이다.

 

제 1부 Geschichte des Kultus 제의 역사

● 제1장 거룩한 장소-다신론, 원시종교 시대 논함 JE(다신론적 개념의 많은 성소), D(요시야 하나의 성소), P(성막에 대한 이야기를 매개로 성소의 통일 전제됨)

● 제2장 제사-JE(혈연관계 제사), D(성소의 중앙화와 제사의 의식화), P(의식화 경향의 완성, 희생제사의 목적은 속죄)

● 제3장 절기-JE(농사의 축제), D(역사적인 사건 기념), P(역사적 사건이 핵심이 됨, 새 절기 : 안식일, 월삭 첨가)

● 제4장 제사장과 레위인 - JE(제사장 직능 정해져 있지 않음), D(요시아 제의 중앙 집중화), P(사독 계열의 제사장으로 제한)

● 제5장 제사장의 몫- JE(규정 세밀 X), D(보상 규정)

 

제2부 전승사

제6장 역대기 - 역대기, 에스라는 제사문서의 시기의 분위기 속에서 호흡하고 있으며 제사문서의 정신에 의해 기록.(BC200) 자신의 시대 투사,

제7장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 역사

신명기적 편집이란 D의 정신속에서 자료를 다루고 P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이루는 단계이다. 사무엘서와 열왕기는 포로시대에 최종 편집됨, 제사장과 선지자는 경쟁의 상대로 서로 간에 긴장 존재.

제8장 육경이야기

여러문서에서 J에서 P로 발전하는 것 묘사, JE는 D의 정신으로 개정됨(창, 출, 수)

결론적으로 옛전승은 P의 포로후의 입법의 관점에서 완전히 개정된것. 현재 오경은 에스라-느헤미야 시대에 출판된것.

 

제3부 이스라엘과 유대교

제9장 율법비평의 결론

제10장 구전적 토라와 성문화된 토라

제11장 하나의 이상으로서의 신정정치

-이스라엘에 신정은 없었고 단지 예언자의 이상이었다.

 

**벨하우젠의 이스라엘 역사 서설에 대한 평가

1. 현상보다 전제에 더 관심. 철학화된 교조주의이며, 헤겔의 역사철학 구조를 따른것.

2. 신명기가 개혁의 일환(재건이 아닌)이란 것은 잘못, 선지자의 영향하에 새로운 이상과 새로운 시대정신을 요구하는게 그의 개혁의 의미인데, 개혁은 옛체제로 돌아가는 것이지 새로운 정신으로 발전해 가는 것이 아니다. (개혁을 다른 개념으로 사용함)

3. 아모스, 예레미야 등은 제의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래서 제사장과의 대립관계라고 하는 등식은 잘못. 선지자들은 제사 자체를 반대하지 않고 백성과 백성의 지도자들의 윤리적인 것에 대해 책망했다.

4. 포로 이전 이스라엘에 성문화도니 율법이 없었다는 것은 추측에 불과, 선지자들의 책망과 멸명에 대한 선포도 근거가 없어져 버린다.

5. 오경의 편집시기를 포로 후기로 돌리는 것이 잘못. 사마리아 오경이 포로이전에 있었다.

6. 포로 후 시대는 비정치적인 시기이기 때문에 제사가 완성된 형태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주장은 잘못. 중간시기는 정치적으로 불안한 투쟁의역사가 계속된 시기였다.

7. 포로 후기 유대 공동체가 중앙성전 체제로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은 잘못. 회당을 보더라도 중앙화가 쉽지 않았다.

8. Witter부터 벨하우젠에 이르기 가지 사용된 신명이 문서의 기원을 나누는 기준이 될 수 는 없다. 특히 저자가 문체의 다양성 추구로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흔하다.

 

 

역사문헌비평에 대한 평가

1. 역사문헌비평의 개념과 발전

1.1 개념

역사 비평이란 용어는 포괄적인 개념, 여러 가지 해석 방법과 관련됨. 문헌비평, 전승사비평, 양식비평, 편집비평 등. 이글은 역사비평과 고전적 의미에서 다루어진 문학비평을 살펴볼것이다.

● 역사비평은 본문에 기록된 역사에 대한 해석방법에 관한 것으로 성경역사에서 하나님의 개입을 배제하는 객관성을 취하려 한다.

● 이것과 대조적인 문헌비평은 원전문제, 문학양식, 저작성, 다양한 구약문헌의 통일성과 연도와의 문제를 다룬다. 고전적 문헌비평은 원전비평(JE, D, P)와 일치한다. 이것은 성경저자가 사용한 문헌을 발견하고 결정하려는 시도이다. 성경의 특정 문헌의 단위가 통일성을 가지는지, 편집의 결과물인지는 이 연구의 결과로 결정된다.

● 고등비평(아이히로트)이라는 말도 역사문헌비평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포괄적인 용어로 두 비평을 언급하는데 사용된다.

 

1.2 벨의 '이스라엘역사서설'

여사문헌비평은 벨하우젠이 문헌과 역사적 비평이라는 두 개념을 결합한 그의 연구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는

1) 분열왕국에 속한 JE시대

2) 요시아의 개혁운동 시기인 주전 7세기를 가리키는 D시대

3) 포로에서 돌아온 시대와 그 후기의 P시대

로 분류한다.

그에게 있어 이스라엘 전체 역사는 P의 이상에 의해 이루어진 비실제적 역사이며, 제사장 종교를 과거로 투사한 역사이다.

 

1.3 벨하우젠 학파와 그후의 발전

중요 지지자들로 부데, 둠, 쉬타데, 스멘트, 키텔, 아이스펠트, 헴펠, 쉬타에크 등

 

● 부데-보충설의 입장 견지

● 스멘트-보충X 독자적 문헌 J J E D P 오문서설 옹호

● 아이스펠트 L(평민문서,P에 반대해서 성직자적, 제의적성격 적으며 가장오래된 문헌), J라는 기호 사용

● 파이퍼-S를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 봄,

● 포러-유목민 자료가 가장 오래됨

● 헴펠-J를 J123으로 나눔

● 쉬타에크-J에 대한 구분 반대

● 폴츠-E의 독자성 부인, 그는 학자들이 J와 E를 나누는 기준이 적합지 않다고 함. 또한 P도 화자가 아닌 '율법수여자, 영적문서 기록한 자'라고 주장. P→J, 그는 모세의 단일신론으로부터 윤리적 유일신론으로 진화했다는 입장 취함.

● 영국;스미스-역사문헌비평의 방법론과 목적과 결론 보급 노력.

● 영국;드라이버-벨의 이론 영향력 있게 보급, 성경본문에 대한 문학적 분석 시도.

● 영국학계에 미친 영향- 국제비평주석 (ICC); 그레이의 이사야주석, 스키너의 창세기 주석, 브릭스의 시편주석, 토이의 잠언 주석

● 미국;브라운과 브릭스(선구자)

 

1.4 벨하우제의 역사문헌 비평에 대한 반론

● 카우프만-대체로 벨을 따르나 D와 P의 연대적 순이 다르다. (P의 산당예배 언급 때문) 전체 오경과 창세기 이야기를 가장이른단계로 파악. 포로이전에 율법집성이 이루어졌음을 주장한 첫 번째 학자. 유일신론이 아주 이른 시기부터 존재.

● 야콥-창세기 통일성 강조

● 카수토, 하란, 허비츠

● 카톨릭;드 보-시대 역사 상황과 사회 상황과 율법의 정신 전제

● 카톨릭;까젤-해석 시 고고학으로 설정된 역사 속에서 본문 볼 것

 

2. 평가

2.1 무비판적 수용과정

벨의 연구 결과는 그 시대 문헌비평을 무비판적으로 받아 들인데서 기인.(세 문서-훕펠트, JE결합-뇔데케, P의 연대-그라프, 원래는 로이스의 것으로 주관적임);결국 학문적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님.

2.2 헤겔의 역사 철학의 영향

● sein은 모든 개념의 가장 원시적인 상태

● Nicht는 sein의 반대개념으로 자아, 완전한 고허, 규정이나 내용이 없는 것과 단순히 비교하는 것

● Werden에 의해 양자가 화해

● 진리는 하나의 운동으로 이것은 곧 진리는 과정이라는 말이다.

● 변증법적 사고의 틀속에서의 종교이해는 종교는 역사를 통해 더 나은 단계의 자의식으로 전진하는 무한정신과 유한 정신 간의 관계가 된다. 유-무-생성의 도식을 따라 종교는 마지막에 달성한 최정점의 과정을 거치면서 획득한 경험에 의해 다음 단계로 진화된다. 그 첫단계sein의 종교는 자연종교(중국,인도,페샤), 둘째 단계는 정신적 개별 종교(이스라엘, 그리스, 로마), 셋째가 절대종교(헤겔식 기독교);고등종교와 하등종교로 구분

● 파트케와 게오르게(헤겔철학 영향 받음)

● 역사문헌비평은 독자의 이해를 모호하게 하여, 결국 구약에 묘사된 실제 역사를 왜곡시키는 파괴적(해리슨)인 것이었다.

 

2.3 부적절한 문헌구분의 기준

● 에발트는 언어와 문체에서 역사문헌비평의 근거를 비판함, 고대문헌에 의하면 여러 신들이 두 개 이상의 이름 가짐

● 쏘진도 신명기준 반대, 칠십인역, 사마리아오경같은 고대사본이 신명을 일관성있게 번역, 배열 않았다고 지적

● 키친- 중복기사문제도 기준으로서 적당하지 못하다. 고대 근동문헌의 일반적 현상

 

2.4 고고학적 발굴물의 증거

● 렌토르프 "Is역사를 서술할 때 구약본문과 함께 Is 바깥의 문헌과 역사적 자료가 되는 고고학적 발굴물을 활용할 수 있다."

● 누주문서의 발견-양자입양, 상속권과 철회할 수 없는 축복 등 족장 풍습과 관련 고대성 시사

● 올브라이트 -낙타 가축화 문제(시대착오), (- 그러나 역사적 증거가 있음)

● 성막-벨은 부인하지만 딤나의 미디안 신전 발견에 의해 반박됨

● 벨은 신명기를 요시아 시대의 산물로 간주, 그러나 고고학적 증거는 주전 2천년기에 쓰여졌을 가능성을 보여줌, 히타이트 수도 보가츠케이의 종주권언약과 신명기 구조가 비슷.

 

2.5 성경계시의 특성

● 마이어-인가의 이성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절대기준이 되는 계몽주의 세계관과 일치하는 성격.

 

 

 

**벨하우젠 이후의 역사문헌 비평

● 부데-J1, J2(홍수이야기 없는 히브리원역사)

● Smend-다섯 원전가설(J1,J2,E,D,P)

● 아이스펠트-L(평민자료, 솔로몬시대, 유목생활의 이상을 반영, Is에 가나안 사상 유입되는 것을 반대하는것 묘사, 신격의 의인화, 이야기 이음매가 느슨, 고대적인 특징 지님), J

● 파이퍼는 창세기에만 새로운 문서가 나타남 주장, S가 제일고대

● 포러는 J를 둘째문서로, L도 받아들여 N으로 바꿈

● Hempel J를 세 저자로 구분(다윗 솔로몬기, Vriezen는 다른 연대 주장)

● Staerk는 J가 하나의 단위라고 주장.

● Volz는 E의 독자성 부인, J와 E를 나누는 근거가 되는 기준은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신명이 근거가 되지못하기 때문), P는 화자가 아닌 율법수여자 혹은 영적 문서를 기록한 자로 주장.

● Rudolph는 volz에 반대, P의 존재와 J와 함께 독자성 인정, 모빙켈은 P의 독자성 인정하지만 E는 독자성 부인

 

 

전승사 비평

헤르만 쿵켈(1862-1932)

● 비벨-바벨논쟁; 고대 근동의 종교가 이스라엘 종교에 미친영향을 범바빌로니즘의 입장에서 다룸

● 궁켈은 구전의 형태로 문서이전에 존재했다고 확신. 기록은 비교적 후대라고 주장. 삶의 정황(생장지) 중요-양식비평(전승사비평)

● 창세기 주석

- 창세기는 영움담의 수집물; 사가로서의 창세기, 그 미적 영향 깊고 높은 수준

- 창세기의 민담의 종류; 벨과 같이 JE를 9,8세기로 다룸. 원인론적(역사적)사가로서 1) 민족기원, 2) 어원적 사가, 3) 제의적 사가, 4) 지리적 사가로 파악

-창세기 영움담의 예술형태; 시적인 특성, 민족적 전통과 관련(구전)

-구전으로 내려온 창세기 사가의 전승사; Is은 유목시기에 사가를 전수받고, 가나안에서 바벨론 사가를 배움, 요셉이야기는 애굽설화에서 옴.

-수집가; 사가의 문서수집은 J E P이며, 여러 사람을 거쳐 편집 작업의 결과

- 제사문서와 최종편집자; P는 전수받은 자료를 자신의 취향에 따라 작성한 작가. P연대는 포로시대이며, 에스라 시대 이후 최종편집자가 P와 JE를 하나로 묶었다고 파악.

 

*전승사 비평에 대한 평가

1. 서론

● 전승사 비평은 역사문헌 비평에 대한 반응으로 나온것임.

● 현대비평가들은 성경에서 최종적으로 기록된 전승을 형성하는 과정을 중시하는 성경해석 방법이라고 함.

● 이 비평방법은 문헌비평과 양식비평 같은 여러 다른 이론을 전제함(아이히호른이 사용한 종교사학파의 방법론 포함)

2. 발전과 특성

2.1 쿵켈: 전승사 비평의 선구자

전승의 개념은 리차드 시몬이 처음 제시. 벨이 원전에 관심이 있었다면 궁켈은 문헌형성이 구전의 영향을 받았다는 역사적 단계를 이해한 것. 본질적으로 생장지;문맥;삶의 정황은 사회학적 문제임.

● 민담으로서의 창세기, 민담은 "과거의 인물이나 사건을 다루는 통속적이고, 오랜 전통을 가진 시적인 이야기"

● 창세기 기록 역사를 원인론적 민담으로 설명, 원인론은 실제 존재않는 이야기를 꾸며내어 당대 제반 현상의 기원으로 제시하려는 이론이다.

 

2.2 궁켈 이후의 발전

● Hugo Gressmann-전승사적 방법을 출~열왕기 까지 연구

● 양식사는 전승사의 단어보다 좀더 포괄적임. Verhoef는 전승사가 양식사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했다고 말한다. 몇몇 독일학자와 스칸디니비아학파로 전파됨

● Alt는 사회학적 접근 방식과 고고학적 정보를 통해 설정된 구도속에서 전승사적 방법에서 얻은 통찰력으로 이스라엘 율법 기원 연구. 율법의 구분- ① 조건문 형식의 율법(기본형, 만일~하면), ② 당위적 형식의 율법(특이형, ~하지 말지니라) / 그에 의하면 조건법은 동해보복과 같은 가나안법을 물려받은 과정을 보여준다.

● Von Rad는 전승의 작은 단위와 생장지에 관심. 육경형태의 최종단계의 궁극적 출처에 대해 연구. 육경은 다섯단계이 주제로 형성되며, 족장사, 애굽에서의 압제, 출애굽, 광야여행, 가나안 입성 등이며 이 주제들은 역사적 작은 고백이다. 그는 길갈이 지리적으로 전승의 최종목표가 되는 가장 근본 고백으로 간주.(즉, 맨 마지막 것이 나머지 전승을 묶어주는 역할), 전승 편집과정에서 야웨기자의 역할과 신학적 영향에 중요성 부여. 그의 중점적 관심은 역사가 아니라 고백, 즉 무엇을 믿었으며, 전승속에서 신학적으로 무엇을 고백하였는가에 관심.(실제 역사와 관련성 없음)

● Martin Noth는 오경의 다섯가지 주제를 통하여 신명기에서 열왕기 까지 전체의 책이 거대한 역사적 신명기적 작품에 속한다고 주장. 그는 신명기를 독자적 작품으로 파악, 사경을 한 단위로 취급함. 그의 연구는 지파동맹체로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평화적으로 유입했다고 주장. 그의 이론은 중앙성소를 중심으로 한 제의를 통한 연합기구이다.

● L. Rost는 사무엘서와 열왕기의 역사 이야기에 적용하여, '왕위 계승 설화'를 분류해냄(독립적 이야기로)

● 스칸디나비아 학파는 전승사적 방법론으로 구약 연구

- Johannes Pedersen(덴); 학파 창시자

- 모빙켈(노르웨이); 시편 연구, 궁켈의 제자, 시편 47, 81, 98 '제왕시'는 바벨론의 신년축제때 왕이 즉위하듯 이스라엘에서도 사용됨 주장

- Nyberg는 구약은 구전에 기초하여 기록되고, 구체적인 문자화는 포로후로 봄. 즉 전승 집단 연유설.

- Ivan Engnell은 니베르크 결론 채택, 전승집단과 오랜 구전기간 주장.

- G. Widengren Is에서도 고대 근동과 마찬가지로 전승이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승을 빨리 기록하는 성향이있다고 주장.

 

3. 평가

3.1 궁켈의 심미적 관점

● 헤르더의 낭만주의에 영향 받은 궁켈은 창세기를 역사적 민담이라고 인식한다. (무시간적인 개념) 고상한 의미의 주석은 예술이기 때문에 이해 차원이 아닌 창조할 수 있는 주석가 이어야 한다고 주장. 그러나 그는 시의 내용 간파에는 실패했다.

 

3.2 민담과 역사

● 민담을 역사와 대조시킴. 그는 민담이 순수 신화는 아니라할지라도 신화적이고 허구적인 요소를 지니기에 역사적 신빙성을 가진 글이 아니라고 주장.

 

3.3 종교사학파의 관점

● 궁켈의 또 하나의 전제는 종교사학파의 개념이며, 영국의 이신론에서 유래하여 일반종교학으로 발전한(비교종교학;미국)것으로, 모든 종교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 평가하는 것이다. 그의 관심은 넘겨받은 자료가 어떤 독특한 방식으로 이스라엘에 형성 되었는가 였다. 종교사학파의 전제는 대체로 우월한 문화가 항상 열등한 문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제국주의 식민사관 정당화 이론)

● 폰 라트와 노트는 전승사 비평 철저하게 적용 시킴.

- 라트는 전승의 신학과 고백의 기능에 관심, 노트는 전승의 역사를 밝히는데 관심. 라트는 그의 [구약신학]에서 구약이 실제 역사기록이 아닌 구속사를 기록한 어떤 고백을 담았다는 전제에서 출발. (즉 믿음에 의해 형성된 전승의 설명) 그에게 역사는 믿음에의해 채색된 그리고 야웨 기자의 신학에 의해 주조된 역사에 불과, 그의 구약신학은 출애굽부터 시작.

- 노트는 성경역사로부터 결과적으로 허구적인 역사를 재구성하려고 노력. 그의 지파동맹체 가설은 역사 연구에 종교사학파적 이념을 적용시킨 결과였다.

 

3.5 구전과 성문화

● 전승사 비평 지지자들은 구전을 구약이해 근본요소로 여김, 기록된 구약은 포로 후로 파악. 그리고 성문화의 전환은 변화하는 시대적 요구와, 문화적 혼합주의가 감지되는 위협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났다고 주장.

 

4. 결론- 이성이 권좌를 차지한 계몽주의 시대에 전승사비평의 방식은 세속문학과 같은 원리를 성경에도 적용시켰다.

 

***오경에 대한 로마 카톨릭 학자의 견해

● de Vaux 수세기에 걸쳐 오경이 유기적으로 성장. 모세의 사역과 그 정신이 오경을 지배하는 간접적인 저자.

● H. Cazelles- 고전적 4문서설 옹호, 고고학 발굴 결과 중시

 

***유대인 학자

● B. Jacob 창세기의 유기적 통일성 주장

● U. Cassuto 오경의 통일성과 또한 다양한 성격의 전승 인정. 호머와 우가릿 서사시와 오경의 비교 통해 헬라문화와 가나안 문화 연결선을 주장

● 카우프만 문서설 인정, 전체 오경은 포로 이전의 것, p가 d보다 더 오래됨(창세기 기사가 가장 오래됨, 선지서는 율법의 영향이 많이 나타남. 윤리적 강조와 율법서적 제의, 윤리적 계명 등이 반영)

● Auerbach 문헌비평을 받아들임.

 

**올브라이트 학파

존브라이트의 [이스라엘 역사] 가장 잘 쓴 책으로 인정하지만... 그러나 존브라이트와 그의 학파의 단점은 지나친 고고학적 증거에 집중하는 것. 참고 자료이지 진리 입증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부족 대표자로 본다. 혈연을 거의 인정 안하는 경향, 성경의 계보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개혁주의 진영

● 노르찌에이- 다양한 문서에서 오경이 성장, 편집위해 많은 시간 필요 인정

● E. J. Young 오경이 본질적으로 근본적으로 모세의 작품이지만 후대에 작은 첨가 나 수정이 있을 수 있음 주장 - 만나가 길갈에서 멈춘 사건, 모세의 매장지 기록(요세푸스의 경우 모세가 썼다고 주장)

● Moller는 오경의 통일성과 정교한 구조를 주장.

● Aalders 모세 이후의 편집자의 작품

● 헤리슨은 오경은 사무엘 시대에 오늘의 형태가 되었다고 하며, 모세가 상당히 많이 관련되었음.

● 깁슨은 히스기야 신하들이 편집자.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