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주의, 쉴라이에르마하의 주정주의 신학, 그리고 한국교회
"기독교 신앙"은 쉴라이에르마허의 주 저서로서 다른 사람들의 교리서에 해당한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와 같은 것이다. 교리를 신앙이란 말로 표현한 것은 교리도 인간의 종교의식에서 나오고 인간의 종교적 자의식으로 이해하였다. 이 인간의 자의식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즉 인간론이 먼저 나온다. 세계에 대한 인간의 종교의식,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종교의식. 이 중에 중요한 것은 인간이 얼마나 자유를 확보해 가는가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자기에 대해 어떤 종교의식, 세계, 하나님에 대해 어떤 절대 의존 감정을 지니고 있는가이다. 예수님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생각하고 의존하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즉 인간의 감정의 문제이다. 원죄라는 말을 쓰지 않고 죄의식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정통신학에서는 죄의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죄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쉴라이에르마허와 같은 이런 신학을 가리켜서 의식신학이라고 한다. 모든 것의 중심을 인간으로 삼는 인간 중심의 신학이다.
그를 비판하자면
① 그는 하나님을 의존 감정의 대상으로만 이해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체이시다. 즉 하나님은 대상이 아니라 주체이시다.
② 너무 신앙을 감정 편향적으로 이해하였다. 신앙을 의식으로 환원시켰다. 그러나 신앙은 의식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로써 우리가 전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태도, 변화이다.
③ 너무 기독교 교리를 감정과 신의식 위에 수립하였다. 이렇게 되면 모든 신학을 상대주의가 될 수 밖에 없다.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신학이 나올 수 없다. 이러한 신학을 내재주의적 신학이라고 한다.
④ 기도도 하나님에게 직접 연결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위로를 받는 것으로 기도도 의식의 차원으로 환원시켰다. 대부분의 실천을 의식으로 환원시켰다.
⑤ 삼위일체와 종말론적 사건의 성경적 예언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 성령을 예수에게서 나오는 공동체 정신이라고 즉 성령을 신적 에너지로 이해한다. 종말사건을 역사적 지평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종말이라고 한다. 종말을 관념적으로 이해한다. 즉 삶이 늘 죽음에 위협에 있는 것으로 본다. 그는 종말을 미래적 사건으로 보지 않고 초월적, 관념론적으로 이해한다. 성령은 나의 신의식을 북돋아주는 에너지다. 몰트만이 종말을 역사적 지평으로 돌리려고 노력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이다.
이러한 것들이 한국교회에 미지는 영향이라고 한다면 먼저 감정적이고 기복적인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한국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중심이 아니라 복을 받는 것이 중심이 되는 신앙인들이 많으며 또한 성경에 대한 100%의 신뢰를 하지 않는 것은 자유주의나 한국에 있는 여러 이단에서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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