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학교자료

영국의 엘리자베스 빈민법을 전후하여 제정된 빈민을 위한 법들의 차이와 역사적 배경

by reviewer_life 2013. 12. 16.
반응형

영국의 엘리자베스 빈민법을 전후하여 제정된 빈민을 위한 법들의 차이와 역사적 배경

 

 

인클로저는 방직업인데 노동력이 넘쳐나서 임금이 너무 낮았다.

 

1348년 흑사병으로 인해 인구의 30~45%가 사망하여 노동력이 부족하여 임금이 상승하게 된다.

 

1351년 노동자규제법은 임금에 상한선을 둠으로 노동력을 확보한다. 또 걸인과 부랑을 금지시키고 농민쟁탈을 억제한다.

 

1388년 빈민법은 임금고정과 노동력의 지리적 이동을 금지했다.

 

1531년에는 거지면허를 주어 구걸을 허용하고 노동능력이 있는 걸인은 처벌을 했다. 그리고 미성년자 걸인은 도제가 되어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건강한 부랑자 걸인 처벌법(1536)에는 세 번 잡히면 사형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그만큼 부랑자와 걸인을 사회악으로 간주했다.

 

빈민구제법은 노동능력자에게 강제로 일시키는 것이 비용이 더 많이 드는 것으로 판명되어 효과적이지 못했다.

 

 

엘리자베스 빈민법은 국가가 최초로 빈민을 책임지기로 한 법이다. 노동능력의 유무에 따라서 대우가 다르며 원외구호를 실시했다.

 

1662년 정주법은 도시 유입을 막기 위해 제정했다.

 

1772년 작업장법은 네덜란드 구빈원 제도를 적용한 것이다. 민간이 작업장을 운영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민간 작업장은 적은 투자에 많은 이윤을 내려는 목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태어난 아기의 82%가 한 살이 되기 전에 사망할 정도로 매우 비위생적이었다.

 

토마스 길버트법은 원외구호를 확대하고(엘리자베스 구빈법의 변화) 노동능력 빈민과 실업자에게 일자리, 구호물품과 금품을 제공했다.

 

스핀엄랜드법은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경제적 혼란기였다. 최초로 최저생계비를 보장하였다. 인도주의적이고 자비적인 인도였고 낙인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법은 가장 발전된 법이었지만 당시 상황과 여건으로 인해 효과를 보지 못하고 신빈민법의 출현을 가져오게 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