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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8

[좋은 시] 우리가 가야할 곳, 혹은 가는 길은_롱펠로우 인생찬가 中 우리가 가야할 곳, 혹은 가는 길은 향락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며 내일이 오늘보다 낫도록 행동하는 바로 그것이 인생이라. 아무리 아름다울지라도 미래는 믿지 말라. 죽은 과거는 죽은 채 묻어 두라. 행동하라-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 속에는 마음이 있고 위에는 신이 있다. 위인들의 모든 생애는 가르치나니 우리도 장엄하게 살 수 있고 떠날 제엔 시간의 모래 위에 우리의 발자국을 남길 수 있음을. 아마 먼 훗날 다른 사람이 장엄한 인생의 바다를 건너가다가 외로이 부서질 때를 만나면 다시금 용기를 얻게 될 발자국을. 그대여, 부지런히 일해나가자. 어떤 운명에도 무릎꿇지 말고 끊임없이 이루고 바라면서 일하고 기다리기를 힘써 배우자. - 롱펠로우의 인생찬가 중에서 2014. 11. 25.
[좋은 시]_나의 하나님_김춘수 나의 하나님_김춘수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詩人)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女子)의 마음 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여리디 여린 순결(純潔)이다. 삼월(三月)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두빛 바람이다. 2014. 6. 30.
[좋은 시]_능금_김춘수 능금_김춘수 그는 그리움에 산다. 그리움은 익어서 스스로도 견디기 어려운 빛깔이 되고 향기가 된다. 그리움은 마침내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져 온다. 떨어져 와서 우리들 손바닥에 눈부신 축제의 비할 바 없이 그윽한 여운을 새긴다. 이미 가 버린 그 날과 아직 오지 않은 그 날에 머문 이 아쉬운 자리에는 시시각각의 그의 충실(充實)만이 익어 간다. 보라, 높고 맑은 곳에서 가을이 그에게 한결같은 애무의 눈짓을 보낸다. 놓칠 듯 놓칠 듯 숨가쁘게 그의 꽃다운 미소를 따라가면은 세월도 알 수 없는 거기 푸르게만 고인 깊고 넓은 감정의 바다가 있다. 우리들 두 눈에 그득히 물결치는 시작도 끝도 없는 바다가 있다. 2014. 6. 28.
[좋은 시]_부두에서_김춘수 부두에서_김춘수 바다에 굽힌 사나이들 하루의 노동을 끝낸 저 사나이들의 억센 팔에 안긴 깨지지 않고 부셔지지 않는 온전한 바다, 물개들과 상어떼가 놓친 그 바다. 2014. 6. 27.
[좋은시]_ 우리가 물이 되어_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_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시집_우리가 물이 되어, 1986) 이 시는 '물이 되어 만난다면'이라는 미래 가정법 형태로 시작하여 생명력의 합일에 대한 희구를 '물'과 '불'의 상징.. 2014. 6. 27.
[좋은 시]_처용단장(處容斷章)_김춘수 처용단장(處容斷章)_김춘수 바다가 왼종일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이따금 바람은 한려수도에서 불어오고 느릅나무 어린 잎들이 가늘게 몸을 흔들곤 하였다. 날이 저물자 내 근골(筋骨)과 근골 사이 홈을 파고 거머리가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베꼬니아의 붉고 붉은 꽃잎이 지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다시 또 아침이 오고 바다가 또 한 번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뚝, 뚝, 뚝, 천(阡)의 사과알이 하늘로 깊숙히 떨어지고 있었다. 가을이 가고 또 밤이 와서 잠자는 내 어깨 위 그 해의 새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둠의 한쪽이 조금 열리고 개동백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었다. 잠을 자면서도 나는 내리는 그 희디흰 눈발을 보고 있었다. 三月(3월)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라일락의 새순을 적시고 피어나.. 2014. 6. 26.
[좋은 시]_ 꽃_김춘수 꽃_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의미가) 되고 싶다. 한국시사에서 꽃을 제재로 한 시는 이별의 정한을 노래하기 위한 소재로 꽃을 파악한 것이거나, 심미적 대상으로서 꽃을 다룬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존재론적 차원에서 '꽃'을 다루고 있어, 그만큼 심도가 깊다. 여기서 꽃은 하나의 구체적인 실재하는 대상이라기보다는 시인의 관념을 대변하는 추상.. 2014. 6. 26.
[좋은 시] 꽃을 위한 서시_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_김춘수 나는 시방 위험(危險)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존재론적 입장에서 사물에 내재하는 본질적 의미를 추구하는 이 시는 앞에서 설명한 시 에 대한 '서시(序詩)'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이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화자가 남에게 바르게 인식되고 싶어하는 소망을 노래한 것이라면, 이 시는 그와 반대로 인식의 주체로서의 화자가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자 하는.. 2014. 6.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