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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정보/성경자료

성령론 - 바른 말씀 이해와 온전한 순종

by reviewer_life 2014.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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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론 - 바른 말씀 이해와 온전한 순종

 

안영복 교수

 

교회는 개혁되어진 교회, 그래서 더 개혁할 것이 없는 고정된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부단히 개혁해가는 교회이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개혁해 가는 교회' 를 만들기 위하여 우리의 견해와 삶을 깊게 하고 바르게 하기를 힘써야할 사명이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살아 있는 증거다. 살아 움직이며 성장하는 교회를 위해서는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와 선포 그리고 그 말씀 앞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이 있어야 하며 이는 오직 성령의 조명과 역사하심으로만 가능하다.

 

 

 

그러기에 성령 사역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바르게 하는 일은, 곧 개혁해 가는 교회, 성장하는 교회를 위하여 오늘 우리 모두에게 가장 시급한 요청이다. 필자는 이것이 교회의 성장을 위한 중요한 제언이라고 믿는다. 우리 모두가 깊이 상고하고 명확히 해야할 문제들을 약간의 주요 구절들과 함께 제시함으로 도움을 주고자 한다. 이 문제들에 대한 명확한 답을 성경에 근거하여 얻게 될 때 성령 사역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기도하게 되고 그 결과 교회가 성장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1.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자는 누구인가?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쓰고 있었던 120명쯤 되는 제자들(예루살렘 교회)인가 아니면 전체 신약 교회인가? 또는 예루살렘 교회가 모든 신약교회를 대신하여 대표로 성령을 받았는가? / 1:15, 2:3

 

 

 

2. 최초의 신약 교회는 언제 탄생했는가? 오순절 날인가 아니면 그 이전에 이미 교회가 형성되었는가? / 20:19~23, 28:19~20, 1:14

 

 

 

3.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순절 이전에 중생했는가 아니면 오순절에 성령이 임함으로 비로소 중생했는가? 그것도 아니면 부활의 날 저녁에 주께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했을 때 중생하였는가? / 고전 12:3, 16:16, 15:3, 17:9, 14:17, 1:14

 

 

 

4. 오순절과 같은 성령의 충만한 임재는 오순절 하루에 국한되는가 아니면 사도시대에만 국한되는가? 또는 오순절 이후 지금까지 우리 시대에도 계속 반복되는가? 어떤 의미에서 일회적이며 어떤 의미에서 계속적인가? / 2:28, 2:17, 10:44~47, 11:15~18, 11:13, 2:38~39, 1:33, 15:26, 21:14, 14:16

 

 

 

5. 오순절에 성령이 충만하게 임한 것은 성령세례인가 아니면 오순절 성령 강림은 성령 세례요 그 결과가 성령충만인가? 고넬료 가정에 부어진 성령은 성령세례가 아닌가? / 3:11, 3:16, 1:8, 1:33, 1:5, 2:1~4, 11:15~16

 

 

 

6. 오순절에 성령이 충만히 부어진 목적은 무엇인가? 사람들을 중생시켜 신약교회를 탄생시키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모인 사람들 각자에게 복음 증거 능력을 부여함으로 본격적인 복음시대(선교시대)를 열기 위해서인가? / 24:49, 1:8, 2:3

 

 

 

7.성령세례와 중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같은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인가? / 3:4~8, 벧전1:23, 1:18, 8:12~17, 19:1~7, 2:33, 11:13, 24:49, 1:8, 11:18, 3:5

 

 

 

8. 사도행전 237~39절에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는 이 약속은 어떤 성격의 약속인가? 이 약속이 사도행정 14절의 아버지의 약속이나 233절의 약속하신 성령과 문맥상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동일한 약속이 분명하다면 이 약속은 이미 중생하여 성령을 모시고 있는 제자들이(14:17)받은 성령의 충만한 임재인 성령세례 곧 오순절에 받은 그같은 성령의 능력적 임재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성령 세례를 중생과 동일시 할 수 있는가?

 

 

 

9. 고린도전서 1213절은 어떻게 이해함이 옳은가?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한 보편적 성격의 말씀으로 중생을 가리켜 성령으로 세례 받았다 함인가 아니면 바울을 포함한 고린도 교회 신자들이 성령으로 세례 받아(성령의 능력적 임재)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사명을 잘 감당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인가? 그리고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 고전1:4~7, 2:3~4, 10:46, 19:6, 7:37~39

 

 

 

10. 오순절 이후 성령님은 교회에 정주(定住)하시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보좌 앞에 계시며 거기서 성부와 성자로부터 항상 나오시는가? 취임설 과 확장설 이란 어떤 견해인가? / 1:4, 5:6, 15:26, 1:17, 2:33, 38

 

 

 

11.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그리스도의 객관적 구속 사역에 속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성령께서 죄인의 마음과 생활에 적용시키는 구원의 서정에 속하는가? / 19:30, 4:25, 3:11(3:16), 11:18, 3:5

 

 

 

12. 성령세례를 제2의 축복이라 방언을 성령세례의 유일한 증거(표식)라 주장함은 성경적으로 타당한가? / 10:44~47 3:5~7 8:17 16:17~18; 고전12:7~11, 30

 

 

 

13. 요한복음 1417절에 의하면 다른 보혜사요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오순절 이전에 이미 제자들과 함께 거하고 있음을 지적하여 말씀하시기를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하셨다. 이 말씀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제자들은 중생했으므로 보혜사 성령께서 이미 제자들과 함께 거하고 계시지만 오순절에 동일한 성령이 더 충만한 형태로 임재하실 것을 말함이 아닌가? 만일 그러하다면 성령은 계신 곳에 또 계실 수 없다. 중생할 때 성령이 오셔서 내주하시므로 다시 오실 수 없다는 표현은 타당한가? / 14:16~17 1:5, 8 2:1~4

 

 

 

14. 요한복음 167절에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주님이 승천하기 전에는 보혜사 성령이 제자들에게 오시지 않는다는 의미인가? 만일 그렇다면 요한복음 1417절과 모순되지 않는가 아니면 주님이 우리 위해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뒤에 비로소 성령의 엄청난 발출이 제자들과 세상 위에 내릴 수 있었다는 의미인가? / 16:7 7:37~39 4:7~8(68:18) 2:28 24:49 1:4~5, 8 2:1~4, 17, 33, 38~39 10:44~45 11:15~18

 

 

 

15. 성경에 보면 네종류의 세례가 있으니 곧 물세례 성령세례 불세례 및 고난의 세례(12:50)이다. 그런데 에베소서 45절에 보니 세례는 하나라고 한다. 언급된 각 세례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떤 의미에서 세례는 하나인가? / 3:16 1:5 12:50 6:3~11

 

 

 

16.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로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3:5)는 갈라디아 신도들이 믿음으로 성령세례(성령의 능력적 임재)를 받고 능력있게 봉사하게 되었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중생하여 믿게 된 순간 능력을 행하시는 성령을 받았다는 의미인가? / 24:49 1:8 3:6

 

 

 

17. 에베소서 13절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은 중생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될 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다.받아버려서 남아있는 영적 신령한 복이란 있을 수 없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신자생활을 열매 있고 부요하게 하는 모든 성령의 사역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임하는 신령한 복이란 말인가? / 1:17 2:33, 38~39 3:5~7 11:17~18

 

 

 

18.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는 어떻게 구분함이 옳은가? 아담부터 그리스도의 초림까지는 구약 시대이고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그리스도의 재림까지의 기간이 새 언약의 시대 곧 신약시대로 봄이 옳은가? 아니면 구약시대는 아담부터 그리스도의 초림까지고 새 언약의 시대 곧 신약시대는 오순절 성령강림부터 그리스도의 재림까지이고 그 중간 기간은 구약시대에 속하거나 혹은 신약시대의 준비기와 같은 과도기로 봄이 옳은가? 아니면 아담부터 그리스도의 부활 이전까지는 율법 아래 있는 옛 시대(구약 시대)이고, 그리스도의 부활부터 성령의 법 아래 사는 새로운 시대가 도입된 것으로 시대를 구분함이 옳은가? / 3:15 12:2 11:12~13 8:6~10 고전11:25 4:25 고후3:6 31:31~34 13:20 5

 

 

 

19. 성령의 은사들을 특수 은사와 일반 은사로 구분하여 특수은사(즉 방언의 은사 기적의 은사 신유의 은사 예언의 은사 등)는 지금은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이 옳은가 아니면 성령의 은사들을 이렇게 구분함은 비성경적이며 모든 은사들은 지금도 교회의 덕과 권위를 세우기 위하여 계속된다고 보는 것이 옳은가? 오늘 꽤 많은 사람들이 기적 신유와 같은 은사들은 사도시대와 혹은 초대교회에 속한 것으로 지금은 사라졌으며 지금 이러한 은사들이 일어나는 것은 조작된 것이거나 아니면 사단의 역사처럼 간주하는 것은 타당한가? 성령 훼방죄란 어떤 것인가? / 고전12:8~11, 28~31 12:6~8 4:7~12 12:31~32 요일5:16 3:29~30 6:4~6 (7:22 6:20)

 

 

 

20. 성령세례 성령의 은사 및 성령의 열매는 각각 어떻게 다른가? 성령 세례는 주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는 것으로 복음 증거의 능력을 부여함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외적 사역 으로 교회의 덕과 유익을 위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는 성령의 윤리적 사역(내적 사역)으로 교회 구성원들의 성화(인격적 변화)를 목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각각 차이가 있다고 말함은 잘못인가? / 2:33 1:8 고전12:11 고전14:12, 26 4:12 5:22~26

 

 

 

21. 성령충만이란 의미가 무엇인가? 내주(內住)하시는 성령께서 그 사람의 인격을 지배하는 것이며 인격적 변화나 복음 증거의 능력이나 은사들을 행함은 모두 다 그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발휘라고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그 사람의 인격을 지배하는 것은 성령의 생활 충만으로 그 결과 아홉가지 성령의 열매(인격적 변화)가 맺히(성령의 내적 사역)는가? 이렇게 성령이 내주하시는 신자에게 복음 증거의 능력을 입혀주기 위하여 동일한 성령이 충만한 형태로 임하시는데(24:49 1:8) 이것이 성령세례이며 (2:3) 이 성령 세례의 결과가 성령의 능력충만이고 (2:3~4) 이 때에 일반적으로 성령의 은사들이 동반되어 나타난다고(성령의 외적 사역) 봄이 옳은가? / 5:18 6:5 11:24 5:22~23 24:49 1:8

 

 

 

22. 택함받은 사람과 택함받지 못한 사람에 대한 성령의 사역은 어떠한가? 택함받지 못한 사람에 대한 성령 사역은 보통 은혜에 속한 제한된 사역으로 악을 억제하고 선한 행동을 장려하며 죄를 깨닫게 하고 조명하는 역사이지만 반면 택함받은 사람에 대한 성령 사역은 특별 은혜에 속한 그의 구원 사역이다. 택함받은 사람에 대한 성령의 구원사역은 구체적으로 성경에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 3:5 6:63 3:3 3:5~7 1:5, 8 16:13

 

 

 

23. 오순절 이전과 이후의 성령의 사역은 어떻게 다른가? / 벧전1:10~12 59:21 63:11 2:5 9:20 11:16~25 27:18 34:9 삼상16:13 3:10 6:34 삼상10:9~10 삼상16:14 13:25, 16:20 31:1~11(35:30~35; 24:1~2; 1:8, 2:1~4)

 

 

 

24. 믿는 사람은 이미 성령을 모시고 있는데 요한복음 739절에 그를 믿은 자의 받을 성령이 있다고 하고 이 성령을 받을 때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7:38)고 했으며 누가복음 1113절에서는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들은 믿는 사람이 믿고 구할 때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믿는 자는 이미 성령이 내주하는 자인데 (고전12:3) 구할 때 또 성령을 받는다 라고 했으니 이것은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의 능력적 임재(성령 세례)나 성령 충만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믿는 사람이 성령 받기 위해 기도함은 잘못인가? 오히려 이 본문들은 성령의 더 충만한 임재를 위해 믿고 구해야 할 것 을 가르치지 않는가 기도와 간구 혹은 통회 자복은 믿음의 표현이라 볼 수 있는데 기도를 '조건' 으로 간주하여 성령 받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을 우습게 여김은 옳은 것인가? / 11:3 5~13 대하7:14 29:12~13 11:24 요일3:21~22 살전5:17

 

 

 

 

 

위에서 제기한 이런 문제들을 성령의 조명을 받아 성경을 깊이 상고하고 그 분명한 해답을 성경에서 찾게 될 때 개혁해 가는 우리 교회는 더욱 성장하는 계기를 맞게 될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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