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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능력의 설교자 이전에 경건의 사람

by reviewer_life 2014.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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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능력의 설교자 이전에 경건의 사람

 

 

 

 

 

우선 글을 읽으시기 전에 .....

 

제가 쓰거나 정리한 글은 아닙니다. (출처를 모르겠네요. 어디 잡지였던것 같은데.... 아님... 인터넷 신문사 글이던가요.ㅠ_ㅠ)

 

예전 자료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글인데,

 

그냥 사장시키기에는 아까워서 이렇게 올리게 되네요.

 

스펄전에 대한 글을 찾으시는 분에게 아무래도 유용하리라 생각하며 글을 올립니다.

 

 

어쩌면, 현 시대의 가냘픈 경건함은 오늘날의 복음주의적 시대에 평화와 기쁨을 쉽게 얻으려는 것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현대의 개종자들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눈물의 십자가를 통하여 그 영혼을 인도하는 영적인 훈련을 쌓아가야 하며, ‘온전히 깨끗하게 하심을 확신시키기 전에 그 영혼이 죄를 자각하도록 해야 한다.”

- C. 스펄전, 1890, Autobiography -

 

 

 

진정한 경건이란 무엇일까? 참된 능력이란 무엇일까?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고 하셨다. 진정한 능력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이 그리스도 앞에서 어떠한 자인지를 진실로 자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영혼을 뜨겁게 사랑한 불멸의 설교자와의 만남으로 그 여정을 시작해보고 싶다.

 

스펄전은 1834619일 영국의 에섹스에 있는 켈비돈(Kelvedon)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랑스의 위그노 후손이며, 그의 아버지 존 스펄전(John Spurgeon)도 경건한 독립파 교단의 목사였다. 그는 생후 14개월 때부터 외딴 마을인 스탐본(Stambourne)에서 45년 이상 목회 하던 그의 할아버지 제임스 스펄전(James Spurgeon)의 수하에서 자랐다. 그의 할아버지는 런던 헉스턴 대학을 졸업했고, 성경과 여러 청교도적 작품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다. 거기서 그는 할아버지의 책들을 읽으면서 청교도의 신학을 접할 수 있었다.

 

스펄전은 15세가 되던 해 프리미티브 메소디스트 교회(Primitive Methodist Church)의 평신도 설교자의 설교를 통하여 회심을 체험한다. 거듭남의 사건이 있은 후 며칠 지난 185021일 스펄전은 자신의 모든 것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기를 원했고, 경건하게 그의 결심을 선언하는 하나님과 자신과의 신앙서약을 작성한다. 그 후 1년 뒤에는 케임브리지 근교의 워터비치 침례교회(Waterbeach Baptist Church)의 설교자로 부임하게 되었다.

 

설교를 하도록 부르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진정 그의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는 설교를 해야만 한다. 그것은 그의 뼈 속의 불길과도 같아서 불꽃이 밖으로 퍼져나가기 전에는 견디지 못하리라. 친구들이 그를 판단하고, 적들은 비난하며, 조롱자들이 비웃을지라도 그는 굴복하지 않는다. 즉 천국의 부르심을 입었다면 설교를 해야만 한다. 그 사람의 마음은 천국으로 움직였는데, 누가 그를 멈추게 할 것인가? 하나님이 움직이신 자를 누가 방해할 것인가...”

 

 

목회자의 삶 속에서 스펄전은 굽히지 않는 자기 성찰을 시도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충분히 절제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이상을 꾸준하게 실천에 옮겼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일과 공부와 방문과 기도와 설교로 하루를 채워나갔다. 오직 모든 시간을 하나님께만 바쳤다. 비록 그가 어리긴 했지만, 목사직을 맡고 수행하는 데는 나이가 더 많은 다른 여러 목사들보다 훨씬 나은 점도 많았다. 스펄전의 빠르고 확고한 성공은 그의 영혼의 토대가 되는 필수조건에 있었다. 그는 일관성 있는 목표를 추구했으며, 그 목적의 기초가 그 자신의 마음에 늘 놓여있었다. 그는 세상의 야심을 좇지 않았다.

 

185419세의 나이로 스펄전은 런던 남부에 있는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New Park Street Church)의 목사직을 맡게 된다. 처음에는 시험 삼아 3개월간을 보냈지만 그의 이 사역은 결국, 이후 그가 죽을 때까지 40년 가까이 계속되게 된다. 스펄전은 22세에 런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설교자가 되었다. 1857107일 그는 크리스탈 팔레스(Crystal Palace)에서 23,654명에게 설교하였다. 이 숫자는 그 때까지의 런던 역사상 모인 최대의 숫자였다. 그는 몰려오는 청중을 수용하기 위하여 엑스터 홀(Exeter Hall), 써레이 가든즈(Surrey Gardens)의 음악당으로 예배 처소를 옮겼다. 그러나 장소가 비좁아 1861년 메트로폴리탄 태버내클(Metropolitan Tabernacle)을 건축하였으며, 메트로폴리탄 태버내클은 매주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몰려오는 약 10,000명의 청중으로 가득 찼다.

때로 그는 교인들에게 다른 사람을 위하여 다음 주에는 예배에 참석하지 말 것을 권하였지만, 몰려드는 사람들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품안에 안겼다. 그가 부임한 1854232명이던 신자가 1891년에는 5,311명으로 늘어났다. 그 동안 교회에서 세례를 베푼 사람만 해도 14,460명이나 되었다. 블랙우드(Blackwood)교수가 말한 것처럼, 스펄전은 사도시대 이후의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유능한 설교자였다.

 

성령의 불을 내리시도록 간구합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신다면, 그분은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축복이 되도록 만드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웃의 가장 악한 죄인이 구원받을 것입니다. 불명예의 굴 속에서 사는 이들이 변화될 것입니다.”

 

스펄젼은 언제나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것은 그가 오랜 시간동안 기도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통 속에서 살아왔다는 의미이다. 웨이랜드 박사(Dr. Wayland Hoyt)는 그의 이러한 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실례를 통해 말해주고 있다.

 

어느 날, 런던 외곽지역을 그와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여름의 무성한 잎들이 만든 그늘로 들어갔을 때, 우리는 길가에 놓여있는 통나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통나무를 발견한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리오세요.’ 그는 마치 배고픈 이가 음식을 앞에 놓고 이야기하듯이 자연스럽게 말했습니다.

 

이리오세요. 함께 기도합시다.’ 통나무 옆에 무릎을 꿇고 가장 사랑에 넘치고 경건한 기도로, 그는 그의 영혼을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비범한 경건함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스펄전의 모습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이 하나님과의 꾸준한 동반관계 속에서 그는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매일의 삶속에서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참된 경건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자기 부인과 절제,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려는 참된 헌신에서만 그 불꽃은 발하고 가치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신록이 우거지는 이 계절에 스펄전과 함께 그 통나무 옆에서 기도하고 싶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심령에서부터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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