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독정보/성경자료

권징의 본질과 원천 & 교회의 권세

by reviewer_life 2014. 12. 12.
반응형

권징의 본질

 

1. 권징의 어의적 의미와 그 성격
 

1) 구약성경에서의 권징
 

구약에서 권징의 의미는 두 단어로 사용되었다. 야사르 - 교훈하다, 징책하다, 징계하다와 야케흐 - 책망하다, 꾸짖다, 시정하다, 결정하다
 

야사르는 교육적인 목적을 가진 경책을 의미한다. (돌이키려는 긍정적 의도) 징계에 대한 신학적 기초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과 세운 언약 관계에 근거를 둔다. 징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는 신 11:2 말씀이다. 징계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으로 간주된다. 또한 계약적, 신학적 의의를 지니는 것이다. 자녀와 아버지의 관계처럼 서로 사랑의 상호관계 속에서 징계와 시정과 교훈과 필요를 공급해 주는 것이다. (긍정적 측면)
 

야케흐는 부정적이고 사법적 성경을 띤 단어이다. (사 1:18 야케흐가 잘 나타난 단어) 일차적인 의미를 이루는 사법적인 요소는 사 11:3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명백한 신학적 근거를 가진다.
 

야사르와 야케르 둘다 교육적 의미가 있다. 야사르가 부모의 징계라면, 야케흐는 하나님의 사법적 행위들의 결과로서의 교육과 징계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죄인의 가책으로부터 징계와 형벌에 이르기까지, 심한 시험들에 의한 의인들의 가르침으로부터 교훈과 충고에 의한 그의 지도에 이르기까지의 교훈의 모든 측면을 포괄한다.


 

2) 신약성경에서의 권징
파이데이아 - 어린이들을 훈련시키는 것을 의미. 교육의 뜻을 포함하며, 신약의 징계는 근본적으로 긍정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율법보다는 사랑과 관계되어 있다. 또한 파이데이아는 훈련뿐만 아니라 징계라는 의미로도 사용됨. 파이듀오는 하나님의 사랑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고, 목적이 아닌 방법이고, 하나님의 양자됨을 확인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축복이다.

누데시아 - 권고와 훈계의 의미로 사용된 단어로, 마음을 뜻하는 누스와 두다의 의미인 티데미에서 파생된 것으로 의지와 감정에 호소하여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바른 길로 가도록 하는 훈계, 충고, 권고의 의미이다. 사도 바울은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누데톤)하였다. 교회 구성원들을 권면하는 것은 사도들과 교회 지도자들, 장로들의 중요 과제였다. 에베소서 6:4에서 어린이를 양육하는 올바른 방법은 파이데이아와 누데시아이다. 누데시아는 징벌보다 경고, 권고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다. 권징은 단순한 심판과 징벌과는 다르기 때문에 파이데이아와 누데시아의 의미를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 파이데이아와 누데시아는 서로 보완하여 권면하면서 책망하는 사랑과 공의의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권은 누데시아, 징은 파이데이아

 


2. 권징의 정의
문자적으로 교회의 영적 순결을 유지하며, 심각한 죄를 범하고도 회개하지 않는 교인에게 응분의 책벌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칼빈은 “그리스도 교리에 반대하여 횡포를 부리는 자들을 단속하며 길들이기 위한 고삐와 같은 것이며, 혹은 약한 사람을 격려하는 박차와 같은 것이며, 때로는 심한 타락에 빠진 자를 유순하게,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의 온화함으로써 징계하는 아버지의 채찍과 같은 것이라”정의함.

장로교 헌법에는 “권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교회에 주신 권을 행사하며 설립하신 법도를 시행하는 것이니 교회에서 그 교인과 직원과 각 치리회를 치리하며 권고하는 사건이 일체 포함된다.”

권징은 징계와 책벌 그 자체가 아니라 교회읭 질서와 성결을 위하여 그리고 교인을 올바로 양육하기 위하여 행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난 은혜의 수단이다.

 


3. 권징의 성질
마태복음 18장에는 권징의 성질이 잘 표현되어 있다. (15-18절) 권면을 수용해서 회개하면 해결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두세 사람의 증인과 함께 다시 한번 권면한다. 그것도 거부할 경우 전체 교회가 그 문제를 해결한다. 회개하지 않으면 기독교로부터 분리하여 심판. 15절 말씀에 의거하여 철저히 권징을 시행함으로써 참된 교회의 모습으로 자라가야 한다.

권징은 단지 범죄자를 찾아내고 그를 축출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교회되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훼손되지 않도록 사랑에서 비롯된 권고와 책망이어야 한다.

 


4. 권징의 목적
1) 일반적인 목적

칼빈은 권징의 목적을 세가지로 구분
-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데 있다. (이단과 분리주의자들에 대하여 강력히 조치)
- 선량한 사람들이 악인들과의 교제로 말미암아 부패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데 있다.
- 파문당한 자가 회개하여 마침내 회복되도록 하는 데 있다.


라니는 징벌과 권징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권징의 목적을 밝힌다. 징벌은 잘못된 행위에 대한 보복이며, 권징은 잘못된 행위로부터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다. 권징의 목적은 불순종하는 교인을 항상 돕고, 치료하고, 회복시키는 것이다.
크리브쉬와 재클은 권징은 화해의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죄인이 하나님의 품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죄를 경감해 주는데 권징의 목적이 있다고 보았다.

화이트와 블루는 권징의 목적을 교회의 순수성과 죄인의 의에 대한 화목에 두고 있다.

토마스 오덴은 권고의 목적은 단순히 그 사람을 공동체에서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책망을 통해 마침내 그 사람을 화해의 공동체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장로교 헌법에서는 권징은 교회의 성성과 진리를 수호하며, 범죄자의 신령적 유익을 도모하는 것이다.


요약 : 권징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성도의 구원을 교회에서 보존하기 위해서 실시한다. 교회에 주어진 권징사역의 지상 목적은 신자의 구원이다. 그러나 권징사역은 어떤 경우에라도 무력적인 목적을 가질 수는 없다. 권징은 성도들의 연약함과 부족함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의 선언일 뿐 세상적인 무력으로 강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 고차원적 목적
권징의 본래 목적은 범죄자를 제거하기 위함이 아니라 교정하기 위함이다. 범죄자의 구원은 교회가 책벌하는 고차적인 목적이다. 그러나 한층 더 높은 목적은 개인 신자들의 영적 번성과 풍요로움을 통해 전체로서의 교회의 순결함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권징의 최상의 목적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다. 교회 전체의 번영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방도가 된다. 권징을 소홀히 하는 교회는 교회의 영광을 스스로 손상시킬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을 무시하는 결과가 된다.


5. 권징의 실질적 유익
불완전한 피조물인 인간이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 적절한 책망이 따라야 하며, 그 결과로서 참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 교회에서 권징은 이런 의미에서 실질적 유익을 준다. 권징이 없다면 자신의 연약함을 지속적으로 숨김으로 인해 일시적 평안함을 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성도의 삶을 무디게 하고 둔감하게 만든다.


올바른 권징사역의 결과는 성도들로 하여금 믿음에 든든하게 서도록 하며, 성도들의 신앙을 안전케 한다. 그리고 성도들의 선행의 결실들이 가득히 나타남으로써 풍성한 교회를 이루게 된다.

 

 

 

 

 


권징의 원천과 교회의 권세
1. 권세의 출처
하나님은 우주 모든 권세의 근원이시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위임하신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세우심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권세를 행사해야 한다.


2. 교회의 권세
1) 교회 권세의 원천
교회는 모든 세대에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권위가 온 따에 나타나지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서 가장 충만히 나타난다.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난미께로부터 모든 권세를 위임받으셨다. 교회의 치리를 위하여 교회에게 그 권세를 부여하셨다. 교회의 권세는 하나님의 권세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는 “주 예수는 그의 교회의 머리요 왕으로서 세상의 치리와는 다른 정치 원리를 교직자들의 손에 위임하셨다.”고 했다. 교회에서 행사하는 치리권은 치리회나 그 회가 택해 세운 대표자의 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시행하는 것 뿐이다. 교회의 직원들은 비록 회중을 기구로 하여 직임에 나아갈지라도 권세는 그리스도에게서 받는다. 그러므로 교회 권세는 회중에서도 아니고, 직원에서도 아니고, 회의 결의에서도 아니라 오직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서 나온다.


2) 교회 권세의 성질
하나님은 결코 사도들에게 세상을 지배하는 권세를 주지 않으셨다. (마 20:25-26)
(1) 교회의 권세는 시민적 권세와 구별된다. 교회의 권위를 나타내는 성경의 상징은 열쇠이다. 열쇠는 칼과는 전혀 다른 방도로 사용된다. 칼은 무력을 암시하나 열쇠는 그렇지 않다. 시민적 권세와 달리 교회의 권세는 영적 의미를 지닌 것이다. 교회는 칼의 권세로 행하지 않고, 주의 말씀만 사용하여 벌한다. 교회의 가장 가혹한 벌은 제명, 출교이다. 교회법은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는 법이다. 교회법은 결코 무력에 호소하지 않는다. 설득과 권명이라는 신령한 방도를 사용해야 한다.
(2) 교회의 권세는 도덕적이며 인격적이다.
(3) 교회의 권세는 육신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3) 교회 권세의 위임과 수용
교회 안에는 우리가 마땅히 순종을 표해야 할 많은 위임 권위들이 있다. 우리는 위임 권위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그 권세를 주셨다고 할 때 이는 특별히 소명받은 자들을 위미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는 이들을 교직자들이라 하였다. 모든 교회는 회개하지 않는 죄인을 출교할 권리를 가진다. 교회가 이 일을 행할 수 잇는 것은 오직 사도들이 정당한 생활과 행위의 표준을 제정한 때문이며, 예수님께서 교회 전체에게 권세를 주셨다는 성경 여러 구절에 의해 명백하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3. 교회 권세의 방편
1) 복음적 설교
2) 권징의 시행 - 하나님의 권세는 교회가 말씀에 순종하고, 권징을 온당하게 시행할 때 나타난다. 권징을 시행하는 기관이나 그 대상자 모두 이 가르침에 순종하고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권위가 나타난다.
3) 순종적인 삶 - 실과 금지 - 아담으로 하여금 순종을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를 권위 아래 두셨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우리가 누구에게 순종하기를 원하고 계시는가 아는 것이다.

반응형